혁신이 시대적 화두이다. 조직에서 혁신담당부서, 혁신담당자를 신설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이 성과를 거두려면 적은 투입으로 많은 산출을 거두는 것이 본질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투입-산출관계의 변화없는 혁신이란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정신운동에 불과하다. 지방주민은 감소하는데 지자체 공무원은 오히려 증가하고, 출산율 저하로 초ㆍ중ㆍ고 학생들은 줄어드는데 교사는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맥도날드의 드라이브 스루 코너에서 차에 탄 채 마이크에 대고 주문하면 스피커를 통해 응대하는 사람은 점포 안에 있는 직원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 있는 콜센터 직원이 주문을 접수해 다시 바다 넘어 하와이 맥도날드의 주방으로 송신하고, 주방에서는 햄버거를 만들어 대기하고 있는 고객에게 전달한다. 햄버거 주문이 가게로 접수되지 않고, 태평양을 왕복하는 장거리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깔려 있다.
처음 맥도날드는 가게직원들이 교대로 주문을 받아서 생기는 실수를 줄이고 식사시간에 밀려드는 주문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고자 이를 도입했다. 드라이브 스루 코너에서 주문을 마친 차가 이동하기까지 대기시간은 10~20초이다. 가게 입장에서는 낭비(Loss Time)인데, 점포 하나로 보면 미미하지만 여러 점포를 합치면 큰 규모이다. 이것을 콜센터로 집중시키면 대기시간이 없어져 상당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또 드라이브 스루 코너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히스패닉이 많아 부정확한 영어발음으로 생겨나는 잘못된 주문도 골칫거리였는데, 콜센터 직원을 히스패닉으로 채용해서 이 문제도 일거에 해소했다. 이는 업무를 표준화하고 집중화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기법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의 전형적인 사례다. 맥도날드가 어떻게 보면 하찮은 햄버거라는 제품을 가지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처럼 모든 면에서 경영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결과이다.
이러한 경영혁신은 현대적 기업조직의 탄생과 역사를 같이 한다. 1911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제창과 1913년 헨리 포드가 확립한 포드시스템은 체계적인 경영혁신의 신호탄으로 투입과 산출비율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1990년대는 정보통신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혁신의 시기였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작업의 표준화와 집적화가 작업장을 벗어난 것이다. 미국에 있는 금융회사의 고객불만이 지구를 반바퀴 돌아 인도에 있는 콜센터에서 처리된다는 것은 효율화의 범위가 공간적 제약을 이미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21세기적 혁신이 쉽지 않은 것은 경쟁과 효율화의 범위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 노출돼 있는 기업에 효율성 확보는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이는 말(言)의 성찬이 아니라 사소하고 엉뚱한 부분에서도 개선의 여지를 찾아내는 구체적 행동에서 확보된다. 그러나 혁신의 구호는 요란하지만 시장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조직은 혁신을 물질적 개선이 아니라 정신적 운동으로 해석하고, 행동보다는 구호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여기에다 보고 들은 것은 많지만 실제 경험이 적은 리더까지 있으면 혁신중독증은 불가피하다. 이런 경우 다양한 혁신기법을 도입하지만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면서 조직만 피로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맥도날드나 포드를 혁신하게 한 원동력은 경쟁시장이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혁신은 '경쟁없이 혁신없다'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쟁이 제한된 공공부문의 혁신은 최소한 경쟁의 개념이라도 이해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