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션 TV의 대중화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익숙해진 프로젝터는 스크린 위에 영상정보를 확대·투사해 주는 광학장치다.

프로젝터는 기술에 따라 CRT 프로젝터와 LCD 프로젝터,DLP 프로젝터로 나뉜다.

이 중에서 그동안 시장을 주도해온 것은 LCD 프로젝터다.

LCD 프로젝터에는 3장의 LCD 패널이 쓰인다.

외부에서 들어온 영상신호를 RGB(적·녹·청)로 분리한 후 각 광로에 배치된 3개의 LCD 패널이 재합성하는 방식(3-LCD)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업체인 일진디스플레이(대표 박승권)가 이 같은 상식을 뒤집었다.

한 장만으로도 프로젝터를 작동할 수 있는 LCD 패널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 회사는 1999년 일진다이아몬드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로 출발해 2000년부터 3-LCD 패널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2002년 제품을 출시하고 보니 기존 업체인 일본의 소니와 엡손에 치여 판로 개척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쯤부터 LCD 프로젝터 수요가 DLP 프로젝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일진디스플레이로서는 이미 투자한 1500여억원을 포기하고 사업을 철수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것이다.

돌파구를 찾던 박승권 사장은 2004년 초 '한 장의 패널로 프로젝터를 만들면 휴대형 프로젝터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당시만 해도 이 같은 생각은 꿈으로 여겨졌다.

기존 프로젝터에서 3개의 LCD 패널이 필요한 이유는 각 패널마다 화소 구동 및 액정 반응을 위해 15ms(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의 시간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줄이면 한 개의 LCD 패널만으로 3개의 패널이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지만 소니와 엡손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 오길환 연구소장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각오로 연구에 매달렸다.

패널의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집적회로(IC)로 대체하는 방법,단결정 실리콘으로 대체하는 방법 등 온갖 시도를 다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크기가 안 맞거나 너무 비싸다는 문제에 봉착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 몸을 싣고 퇴근하던 중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 소장은 "영상정보를 첫 번째 화소부터 마지막 화소까지 순차적으로 전달할 게 아니라 한 군데 모았다가 동시에 뿌려주면 구동시간이 0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설명했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오 소장은 또 다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작년 12월 시제품을 제작,0.056초가 걸리던 구동시간을 100만분의 20초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액정 반응 속도도 줄일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액정의 셀갭(Cell Gap·두 유리 기판 사이의 간격)을 기존 3㎛(마이크론·1000분의 1mm)에서 1㎛으로 줄여 반응속도를 기존 5ms에서 1ms로 단축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싱글 LCD 패널은 조만간 '휴대용 스크린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진디스플레이는 오는 2010년에는 싱글 LCD 패널로만 연간 53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