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 요일 앞당기기 경쟁 치열

영화 개봉 요일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이러다 자칫 월요일에 개봉하는 사례마저 나오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치열한 배급 전쟁 때문이다.

4월 말 격전을 치른 한국 영화 '사생결단' '맨발의 기봉이' '도마뱀'은 원래 개봉일을 4월27일로 공지해왔다.

그러나 세 영화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6일로 은근슬쩍 개봉일이 바뀌었다.

세 영화의 배급사인 MK픽처스, 쇼박스, 시네마서비스는 서로 "상대방이 날짜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도 날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배급사들은 하나같이 "극장주들이 4월이 비수기여서 내걸 영화가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프린트를 달라고 먼저 요청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로 인해 신문 광고 등을 부랴부랴 교체하는 소동을 겪었다.

4월26일은 수요일. 불과 3년여 만에 토요일 개봉 요일이 수요일로 앞당겨진 셈이다.


'태풍' 강수에 '작업의 정석' 맞불

지금껏 개봉일이 앞당겨진 것은 블록버스터 출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수요일 개봉은 지난해 연말 CJ엔터테인먼트가 장동건ㆍ이정재 주연의 '태풍'의 개봉일을 전격적으로 12월14일로 잡으면서 비롯됐다.

12월15일로 공지돼왔으나 시사회를 즈음해 14일로 하루 앞당겨진 것.

이에 쇼박스가 '작업의 정석'을 12월21일 개봉하며 맞불 작전을 펼쳤다.

경쟁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허를 찌르는 전략에 쇼박스 역시 1월 개봉 예정이었던 '작업의정석'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앞당기며 수요일 개봉으로 응수한 것이다.

당시 메이저 배급사의 이 같은 개봉 요일 앞당기기 전략은 영화계에서 상당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어 '왕의 남자' 역시 실질적인 개봉 요일을 수요일로 잡았다.

'왕의 남자'의 공식 개봉일은 작년 12월29일 목요일이었으나 28일 이미 190여 개 가까운 스크린에서 '전야제'라는 이름으로 뚜껑을 열었다.

예상치 못했던 흥행 기록이 거푸 경신되자 제작사와 배급사 시네마서비스 측에서 관객 기록을 공지할 때 '12월28일 전야제 포함'이라는 문구를 넣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주5일 근무제'가 금요일 개봉 관행 만들어

토요일 관행에서 금요일로 개봉 요일이 바뀐 것은 2002년 12월로 파악되고 있다.

2002년 10월 '중독'으로 쇼박스가 새롭게 배급시장에 뛰어들면서 CJ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이 시작된 시기.
'색즉시공'이 2002년 12월13일 개봉했으나 실질적으로는 12일 금요일 일반인에게 유료로 첫 선을 보였다.

흥행기록 집계는 12일부터 산정된 것.

그 이후 '주 5일제 근무 시대에 맞춘다'는 의미로 금요일 개봉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주 5일 근무가 앞서 정착됐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토요일 개봉을 유지하고 있어 이 이유는 한국에서만 통용되고 있다.

금요일 개봉이 목요일로 앞당겨진 것은 2004년 2월5일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하면서부터. 이때도 역시 배급사는 쇼박스였다.

개봉 당시부터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목표했던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가 첫 주 바람몰이를 위해 목요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이후 개봉일이 목요일과 금요일을 오가게 됐고 작년 여름 이후부터는 목요일 개봉이 정착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이즈음 수요일 개봉에까지 이른 것.

한국 영화 시장이 커진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개봉 요일의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 외화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개봉 첫 주 성적이 스크린 수 유지의 관건

이 같은 현상은 멀티플렉스의 확대로 스크린 수가 늘어나면서 '와이드 릴리즈'개념이 확장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와이드 릴리즈는 미국식 배급방식으로 개봉 첫 주 최대한 스크린을 확보한 후 그 성적에 따라 스크린이 유지된다.

이 때문에 첫 주 개봉 성적이 스크린 수 유지를 좌우하게 돼 개봉일을 앞당겨서라도 첫 주 관객 수를 늘리려 하는 것.

더욱이 기존 배급사 외에 지난해부터 영화사들의 사업영역 확대로 새로운 배급사가 늘어나면서 개봉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

그러나 이처럼 거의 주중 한 가운데인 수요일이나 목요일 배급하는 방식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심지어 배급사 스스로도 경쟁 자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의 김인수 대표는 "배급사마다 첫 주 관객 동원에 사활을 걸고 있어 개봉일을 점점 더 앞당기다보니 이러다 월요일 개봉작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개봉일의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

제작편수에 비해 상영작 편수가 적어지는 요인도 되고 있다"고 말했다.

"쇼박스 등장 이후 영화 마케팅의 개념이 더욱 적극적이 됐다"고 말하는 쇼박스 정태성 상무 역시 "쇼박스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당겨지는 개봉일에 대한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수요일 개봉이 지속되는 건 생각지 못했던 일인데 한국 영화 세 편이 경쟁을 하는 바람에 '맨발의 기봉이'도 수요일에 개봉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첫 주 관객 공식 집계를 스크린 수가 확정되는 주말 이틀만 집계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한다.

영화 마케팅사 올댓시네마의 채윤희 대표는 "결국 영화 흥행은 작품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왕의 남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소모전에 가까운 개봉 요일 앞당기기 경쟁이 영화계 스스로의 의지로 자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