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신 < 유앤파트너즈 대표 susie@younpartners.com >

무심코 채널을 돌리던 중 한순간 화면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심한 중증 장애인이지만 구족화가로서 또 사진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앨리슨 래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또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임신한 모습의 조각상이 영국 트래팔가 광장에 전시되면서 '현대판 비너스'라 불리는 그녀는 운신조차 힘든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밝고 당당해 보였다.

일하는 전문직 여성이어서일까? 그리고 보니 얼마 전 TV의 모 프로에서 한 장애인에 대해 방영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복지관에서 일해 한 달에 겨우 20여만원을 받지만, '그나마 자신은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일하는 즐거움, 그것이 어찌 정상인들만의 것이랴.

문득 몇 년 전 세계 100대기업에 드는 다국적 회사로부터 의뢰받았던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당시 그 회사는 1년 동안 채용하는 직원 중 30%를 장애인 혼혈아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인력으로 채우라는 미국 본사에서의 지시가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결과는 0%,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수치였지만 본사 인사부로선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당장 지시 불이행에 대한 추궁이 들어왔고, 담당자는 국내 사정을 설명하며 '한 명도 채용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며 해명하기에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요즘 들어 종종 여러 매체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인간승리의 인재들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인재추천을 업으로 하는 필자조차도 기업 현장에서 그들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간신히 입사를 하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함과 몰이해로 인해 스스로 퇴직하고야 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공기업을 비롯 기업에서는 해마다 장애인의 날에 맞춰 경쟁이라도 하듯 몇 %의 직원을 장애인으로 채웠다는 홍보성 보도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채용한 장애인들이 정규직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는지,아니면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에 부딪쳐 절망하며 떠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다음 장애인의 날에 맞춰 다시 메우고 홍보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수치에 매달리는 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그들이 경제적으로 정착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 제반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OECD 회원국인 한국이 장애인도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