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현대자동차 그룹의 글로벌 경영 차질이 '실제 상황'이 됐다.

이미 착공식이 무기 연기된 기아차 미국 공장과 현대차 체코 공장 착공은 아예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기아차의 동남아 CKD(현지 조립생산) 공장 건립 계획도 백지화되는 등 현대차그룹의 해외 사업이 모두 멈춰섰다.

특히 정 회장 구속의 '후폭풍'으로 현대차는 당분간 경영공황 상태를 맞을 수밖에 없어 사업 차질은 물론 대외 신인도 추락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도 불가피해졌다.

현대차그룹은 긴급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으며 신규 투자를 당분간 전면 중단키로 했다.

글로벌 경영 올스톱 '현실로'

정 회장의 구속으로 설마 했던 경영 공황이 현실로 나타날 공산이 커졌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기아차는 동남아 시장 개척을 위해 태국 등에 CKD 공장을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지만 최근 백지화했다.

정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그룹의 해외 프로젝트가 올 스톱된 데 따른 후유증이다.

기아차는 당초 올해 안에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 CKD 공장을 착공,2009년까지 연산 10만대 규모의 공장을 건립한 뒤 이후 생산 규모를 20만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현대차의 해외 공장 건설 프로젝트도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연산 30만대 규모로 체코 노소비체에 건설될 예정이던 유럽 공장은 정 회장의 구속으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체코 총리가 공장건설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5월 중 방한키로 하는 등 체코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리 파로우벡 체코 총리는 이날 체코 통신사인 CTK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자금 수사가 체코 공장의 취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이 같은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현대차 공장이 직·간접적으로 1만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내총생산(GDP)의 2%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장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여기에 환율 급락과 유가 급등으로 인한 실적 악화까지 겹쳐 걱정이 태산이다.

실제 기아차의 올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3859억원과 322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0.7%에 불과했다.

순이익(384억원)은 작년 동기보다 80.1%나 줄었다.

아직 1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현대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들어 악화된 경영환경 탓에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감소하는 등 실적이 기대치를 크게 밑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차 비상경영 체제로

현대차그룹 수뇌부들은 충격 속에 긴급 심야회의를 열고 '선장 잃은 현대차그룹'을 꾸려나가는 방안을 논의했다.

일단 각 계열사에 포진한 부회장들을 주축으로 긴급 현안 위주로 업무를 처리키로 했다.

해외 공장 건설 등 그룹의 사안이 걸린 대형 프로젝트나 신규 사업은 총수의 결심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정 회장이 복귀할 때까지 판단을 미루기로 한 것이다.

일단 각 부회장들이 담당 사업과 계열사를 한시적으로 책임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현대차 업무는 김동진 부회장이 총괄하고 위아 현대오토넷은 김평기 부회장,현대모비스는 한규환 부회장,로템은 정순원 부회장,현대하이스코는 김원갑 부회장,현대제철은 이용도 부회장이 각각 담당한다.

이전갑 현대차 기획총괄 담당 부회장은 원·달러 환율 하락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그룹 전반의 대응책을 책임 진다.

기아차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정의선 사장과 조남홍 사장 투톱 체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에 뚜렷한 '2인자'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부회장 중심 비상경영 체제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 회장의 구속이 장기화될 경우엔 의사 결정 지연 등으로 경쟁력이 급속도로 약화될 수 있다.

그룹 관계자는 "당분간 정 회장의 '빈 자리'가 그룹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 구축도 결국 정 회장이 결정해야 할 사안인 만큼 정 회장의 빠른 복귀 외엔 상처 입은 현대차그룹을 살릴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