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25일 내놓은 협력업체 지원 방안은 규모와 내용,그리고 시기적인 측면에서 파격적이다.

원·달러 환율 급락 등 최악의 경영환경과 검찰 수사로 인해 현대차그룹이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 상태에서 부품업체를 위해 향후 5년간 15조원이란 거금을 투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협력업체 지원에 나선 것은 환율 하락과 유가 급등으로 인해 중소 협력업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기반이 붕괴되기 전에 대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본 것이다.

연초 시행한 납품단가 인하 조치로 협력업체들에 부담을 준 것을 '결자해지'한다는 측면도 작용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조치에 단기적인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및 품질관리 지원 등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대거 포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생 외면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이 자금 압박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협력업체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은 올초 시행한 납품 단가 인하 조치가 검찰 수사의 단초 가운데 하나였다는 판단에서다.

원·달러 환율이 60원 떨어지면 영업이익이 3500억원이나 줄어드는 현대차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대기업이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중소기업에 떠넘긴다'는 역풍을 맞으며 현대차그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측은 "검찰 수사와는 무관하게 중소 협력업체의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안에는 연초 납품단가 인하 조치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한 파격적인 지원 방안이 대거 마련됐다.

협력업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금 지원 폭을 늘린 게 대표적인 예.

현대차그룹은 다음 달부터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부품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고,대기업 협력업체의 내수대금에 대해선 어음 기일을 기존 120일짜리에서 60일짜리로 단축시켜주기로 했다.

협력업체의 자금 운용에 숨통을 틔워주고 이자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2010년까지 15조원을 협력업체들에 지원키로 한 것도 업계의 예상치를 넘어섰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는 기존 계획(13조원)보다 2조원 늘어난 수치다.

현대차는 아울러 500억원 규모의 '협력업체 품질육성기금'도 조성,업체당 최대 20억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단순한 위기모면용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조치에 기술 및 품질 지원 방안을 대거 포함했다.

단기적인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협력업체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른바 '혁신 자립형 협력업체'를 육성한다는 것.이번 조치가 검찰 수사에 따른 '단기 위기 모면용'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협력업체를 육성하기 위한 것임을 실천계획을 통해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또 협력업체 엔지니어를 현대·기아차에 상주시켜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본사 임직원을 협력사에 파견해 기술 및 품질 자문을 해주기로 했다.

현대·기아차의 휴면 특허도 협력사에 넘겨준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1차 협력사에 한정했던 교육 훈련 지원을 2차 협력사로 확대,1만3000명 수준이던 연간 교육 인원을 2만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밖에 수입부품 국산화 등을 통한 원가절감 성과의 50%를 협력업체에 돌려주는 성과 공유시스템을 운영하고,구매본부 내에 상생협력추진팀을 신설하는 등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방안은 협력업체들이 가려워 하는 곳을 대부분 긁어주는 '종합 선물세트'라고 볼 수 있다"며 "협력업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기 위한 것으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단기조치는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