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연구실에는 10여명의 연구원들이 '마루Ⅱ' '아라Ⅱ'를 붙들고 각종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의에서 전통춤 아리랑을 시연해 화제를 모았던 로봇들이다.

키 155cm에 무게 72kg.머리에는 마이크로폰과 심장박동센서를 달아 사람이나 물체를 인식토록 해놓았고 가슴에는 인식활동에 관여하는 컴퓨터와 로봇 본체를 제어하는 데 사용되는 또 다른 컴퓨터를 내장해놓았다.

균형을 감지하는 센서와 제어기가 부착된 다리는 1초에 20cm를 걷도록 개발됐다.

성학경 기반기술 팀장(상무)는 이 로봇의 수준에 대해 "시속 6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일본의 '아시모'와 비교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지모는 일본 혼다자동차가 개발한 로봇으로 지난 2002년 뉴욕증권거래소 개장종을 울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기업도 로봇사업에 대한 삼성전자의 잠재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로봇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삼성전자만큼 골고루 확보하고 있는 기업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송지오 부사장은 "로봇기술은 전기 전자 무선통신 기계 컴퓨터 내비게이션 콘텐츠 등을 망라하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종착역"이라며 "집안에서 주인이 원하는 대로 각종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홈 에이전트'로봇을 상용화하는 데도 디지털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삼성이 로봇 분야를 신수종(新樹種)사업으로 중점 육성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할 수는 없다.

송 부사장은 "산업용 로봇을 제외한 휴머노이드나 지능형 로봇사업은 아직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미래 전망도 극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며 "다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로봇 상용화 시대에 대비해 기반기술을 미리 확보해두자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생산기술연구소는 또 고가의 반도체 및 LCD 생산장비(산업용 로봇)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회사의 제조경쟁력을 배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로축을 3.6m나 수직으로 움직일 수 있는 7세대용 LCD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동거리를 4m로 늘린 8세대 양산모델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기술 혁신팀의 김동일 상무는 "삼성의 생산노하우가 로봇 설계에 반영되기 때문에 로봇 자체가 일종의 블랙박스"라고 말했다.

수원=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