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 케인은 "로즈버드"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기자 톰슨이 케인의 삶을 추적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다.

로즈버드는 그가 어린 시절 타고 놀던 썰매 이름.부와 권력을 지녔던 만큼 수많은 사람이 곁에 있었지만 정작 마음속을 아는 이는 없었던 셈이다.

우리의 모습은? 부부를 함께 불러내 첫 데이트 장소,상대의 기호 등을 묻던 TV프로그램을 볼 때면 맞는 경우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도 서로를 잘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정신없이 치닫는 동안 풍요로워졌는진 모르지만 돌아보면 문득 다들 외롭다.

천지에 홀로 선 듯해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길을 잃고 섰을 때 우리를 돌려세우는 건 떠나온 옛것,잊혀지고 그래서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담쟁이덩굴 뒤엉키고 이끼 낀,발끝을 들면 집안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골집 돌담은 떨어지지 않으려 계속 달려야 하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쉬어가라고 권한다.

문화재청이 돌담 10곳을 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긴 돌담 꼬리를 따라가면 또 돌담집이 나오고,울 안에 대추나무 있는 돌담집을 돌아서면 감나무 돌담집이 나오고,감나무 돌담집을 따라가면 오동나무 서 있는 돌담집이 나온다'(김기찬 '잃어버린 풍경')고 했듯 돌담은 마을의 상징이었다.

'돌담길 돌아서면 또 한번 보고…'에서 보듯 돌담이 끝나는 곳에서 마을은 끝나고 신작로가 시작된다.

돌담길이 번잡스런 도시의 삶에 주눅들고 지친 이들에게 돌아가 걷고 싶은 곳이 되는 건 바로 그 아늑함과 호젓함,마당의 웃음소리가 담 너머로 들리던 정겹던 삶의 추억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하고 나면 일대를 정비해 관광자원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꾸 없어지는 돌담을 보전하겠다는 일은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관광자원화한답시고 억지춘향식 보수는 하지 말았으면 싶다.

돌아봄으로써 마음을 쉬게 하는 건 자연스러운 옛것이지 옛것과 새것을 뒤섞어 놓은 퓨전식 담이 아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