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와 조강이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시사회 객석에 앉아 있던 조승우는 고개를 숙였다.

차마 볼 수 없다고 한다.

연인 강혜정과 출연한 멜로 영화 '도마뱀'(감독 강지은, 제작 영화사 아침)에서 조강 역을 맡은 조승우(26)는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데뷔작이란 느낌이 들지 않네요.

이름은 여자 같은데, 영화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였고 극의 구조도 탄탄해서 좋아요"라고 말을 꺼냈다.

공개된 연인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영화 관계자나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헤어지면 어쩌려고"라는 다분히 센세이셔널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상대 배우가 혜정이라서 안 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올드보이'를 본 이후 배우로서 강혜정이라는 배우와 꼭 한번 찍어보고 싶었으니까요."

주변의 호기심 섞인 우려를 한마디로 일축해버리는 조승우.

늘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하는 연기력으로 그의 존재를 점점 더 묵직하게 만들고 있다.

◇"또 착한 남자로 보이네요. 제 연기가 거기서 거긴가"

"한 여자를 20년 동안 사랑하는 남자. 어찌 보면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조강을 그렇게 연기했다고 말했는데 영화를 보니 또 착한 남자 같네요.

제 연기가 거기서 거기인가 봐요."

조승우의 필모그래프를 보면 '와니와 준하'(2001), '후아유'(2002), '클래식'(2003) 등 멜로 영화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멜로 영화라는 게 연기하기 쉽지 않은 장르. 자칫하면 유치하고 식상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음에도 조승우는 멜로 영화를 통해 한 단계씩 뛰어올랐다.

"멜로 영화, 어렵죠.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화의 주제를 '기억'과 '그리움'으로 잡았어요.

한 여자를 늘 기억하고, 늘 그리워하는. 나름대로 연기 플랜을 갖고 촬영했는데 촬영 순서가 왔다갔다 했어도 그건 유지된 거 같네요."

아리와 이별을 고해야 하는 마지막 장면. 아리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물을 참다 결국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정화시키기 충분했다.

"이별 장면을 촬영 초반부에 찍었어요.

메밀밭이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

이별의 감정 몇 가지만 잡고 연기했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벌써 영화 10편, 뮤지컬 10편을 소화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품도 더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후아유'를 지금 찍는다면 또 다른 태도로 임할 것 같다"고도 표현했다.

조승우는 "어느 누구도 사랑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아마도 'Love is…'에 대한 자신만의 답은 죽을 때나 정의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

◇"강혜정과 조승우의 연애담이 아니다"

강혜정이 먼저 캐스팅돼 있는 상태에서 조승우가 출연을 결정지었다.

연인과 함께 촬영하는 것,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왜 부담스럽지 않았겠어요.

촬영장에서는 티 안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혜정이가 한다고 해서 제가 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혜정이가 딱 아리로 보였기 때문에 출연할 수 있었죠."
그는 캐스팅 사연을 꽤 길게 들려줬다.

'말아톤'이 끝난 후 들어온 시나리오 중 가장 맘에 들었지만 뮤지컬 '헤드윅' 공연 때문에 일정이 맞지 않았다.

아리를 강혜정이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강혜정이 시나리오를 봤다.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했단다.

그런데 딱 그 다음날 강혜정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강혜정이 갑상선 수술을 받느라 병원에 있고 그가 간호하느라 함께 병실에 있었는데 등 돌려 누워 있는 강혜정의 모습에서 아리가 느껴졌다.

"강혜정의 아리와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공연이 끝날 때까지 촬영이 시작되지 않아 그가 합류했던 것.
"이번 작품만큼은 조승우의 연기는 크게 볼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서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강혜정에게 잘 묻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혜정이가 욕심을 많이 부려 찍었고 감정 잡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는 "세간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숱한 말에 휘둘린다면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라며 "조승우와 강혜정의 연애담이 아닌 영화이기 때문에 담담히 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20대는 뭐든지 해봐야 하는 나이 같다는 조승우. 한 작품 할 때마다 '산 넘어 산'이었고, 항상 작품을 하는 동안 한 차례씩 슬럼프에 빠졌다.

어느 순간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늘 반신반의하죠. 아마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느냐, 아니냐였던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그걸 넘어서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