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부는 정말이지 할 일도 많다.

살림을 잘하는 건 기본이요 자식 교육 책임져야지,남편 알뜰하게 챙겨야지,시부모 등 일가친척한테 궂은 소리 듣지 않도록 한껏 신경써야 한다.

게다가 남편 수입에 상관없이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불려놔야 "내조를 잘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부부가 함께 꾸려가는 게 가정일진대 이 땅에선 무슨 일인지 자녀교육부터 재테크까지 몽땅 아내의 몫이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나 대외 지명도가 높을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 보인다.

유명할수록,번듯한 직함을 지녔을수록 당연하다는 듯 "집안일은 여자가 알아서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곤 무슨 일만 생기면 남편들은 "몰랐다"며 딱 잡아뗀다.

자녀의 대학입시 부정사건이 터져도,병역비리 의혹이 불거져도,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모은 게 알려져도,뇌물 상자를 받은 게 들통나도,세금을 제대로 안낸 게 밝혀져도,선거용 돈봉투나 양주병을 돌린 게 드러나도 한결같이 "아내가 한 일이다. 억울하다"고 발뺌을 한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안다.

부부 사이가 아무리 뜨악해도 자식과 돈에 관한 한 도리없이 의논한다는 걸.대판 싸운 뒤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다가도 아이가 어디서 한 대 맞았다고 하면 동시에 "누가" 하면서 눈을 부릅뜨는 게 부부다.

하물며 자식의 대학 입시나 병역 건에 있어서랴.

돈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은 집안일엔 담쌓았다"며 혼자 모든 걸 처리하는 듯 말하는 아내들도 실은 가전제품 구입에서 시부모 용돈 액수까지 남편과 상의하거나 최소한 통보는 한다.

집을 비롯한 부동산 매매나 기타 액수가 큰 재테크 관련사항을 여자 혼자 처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한나라당 의원 두 사람의 공천비리 의혹 연루자 네 명이 모두 여자고 그 중 셋이 관련자 부인이라고 한다.

돈을 준 사람과 받았던 사람 모두 자신이 아닌 남편을 위해 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슨일이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차제에 '내조'의 진정한 의미와 한계에 대해 깊이 되새겨봤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