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기자의 세계음식 맛보기] 오스트리아 '비엔나 슈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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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호주댁'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녀를,사람들이 오스트리아와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유럽의 전통 국제 도시 빈 사람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 할 일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1차 세계 대전 발발에 불을 댕긴 죄로 분해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특히 수도 빈은 유럽 문명의 중심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400여년간 신성로마제국을 이끌며 지금은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이 된 중앙 유럽 영토 대부분을 다스리고 에스파냐에까지 세력을 떨쳤을 때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이 모두 빈에서 활동했듯이 당시엔 음악가로 출세하려면 빈으로 가야 했다.
음식 이름에도 '비엔나(빈의 영어식 표현)'가 붙으면 더욱 세련되게 들렸다.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부인 얀 돈코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그때부터 전해져온 빈의 전통 음식 '비엔나 슈니첼'을 소개했다.
비엔나 슈니첼은 얇게 저민 송아지 고기에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입힌 후 버터나 동물성 기름에 튀긴 음식.보통 감자와 레몬 한 조각이 곁들여진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먹던 이 음식을 수입하면서 독일어로 얇게 저민 고기를 뜻하는 슈니첼(schnitzel)에 '비엔나'라는 수사를 자랑스럽게 붙였다.
돈코 여사는 "요즘은 송아지 고기 대신 돼지고기,동물성 기름 대신 식물성 기름을 많이 쓴다"며 "일본 사람들이 비엔나 슈니첼을 수입하면서 돈가스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엔나 슈니첼은 영어권으로 수출되면서 포크 커틀릿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일본인들이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문명을 닥치는 대로 소화해내면서 커틀릿을 가츠레츠로 음차하고 돼지라는 뜻의 돈(豚)을 붙여 돈가스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의 문명 재생산 능력은 탁월했다.
슈니첼에는 원래 소스가 없지만 일본인들은 케첩을 주재료로 돈가스 소스까지 개발했으니 '청출어람'이었다.
일본인들이 동양으로 실어나른 또 다른 오스트리아 메뉴는 비엔나 커피다.
빈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카페 문화로 발전했는데,단 음식을 좋아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이 도시 사람들은 예멘 모카항에서 수입한 진한 모카 커피에 휘핑 크림을 얹어 먹는 아인슈파네(Einspanner) 등을 즐겼다.
일본인들은 이 커피를 도입하면서 귀에 선 독일어 이름 대신 비엔나 커피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빈에서 비엔나 커피를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웨이터들은 눈썹을 치켜뜨며 못알아 듣겠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돈코 여사는 오스트리아의 선진 문명에 대해 "18세기 초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때는 전성기를 맞아 유럽 최초로 의무 교육 제도를 만들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에서는 대학까지 의무교육 혜택을 받는다.
그는 "빈이 국제적인 도시였던 만큼 오스트리아의 음식은 전 유럽의 특징을 두루 흡수하면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음식은 독일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동유럽 지방의 영향을 좀더 많이 받았고 특히 굴라쉬 수프를 포함해 헝가리 음식을 많이 수입했다.
돈코 여사는 "헝가리 굴라쉬는 파프리카를 듬뿍 넣어 약간 맵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양념을 절제해 담백하게 즐기는 게 차이"라고 말했다.
비엔나 슈니첼이 전 세계를 여행한 것 처럼 돈코 여사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도쿄로 유학을 갔다가 윌 헬름 돈코 현(現)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를 만나 이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해외 생활 20년 동안 상하이가 워낙 많이 달라지고 낯설어져 이제는 오스트리아가 더 고향 같을 지경"이라고 했다.
www.hankyung.com/community/kedcool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녀를,사람들이 오스트리아와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유럽의 전통 국제 도시 빈 사람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 할 일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1차 세계 대전 발발에 불을 댕긴 죄로 분해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특히 수도 빈은 유럽 문명의 중심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400여년간 신성로마제국을 이끌며 지금은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이 된 중앙 유럽 영토 대부분을 다스리고 에스파냐에까지 세력을 떨쳤을 때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이 모두 빈에서 활동했듯이 당시엔 음악가로 출세하려면 빈으로 가야 했다.
음식 이름에도 '비엔나(빈의 영어식 표현)'가 붙으면 더욱 세련되게 들렸다.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부인 얀 돈코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그때부터 전해져온 빈의 전통 음식 '비엔나 슈니첼'을 소개했다.
비엔나 슈니첼은 얇게 저민 송아지 고기에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입힌 후 버터나 동물성 기름에 튀긴 음식.보통 감자와 레몬 한 조각이 곁들여진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먹던 이 음식을 수입하면서 독일어로 얇게 저민 고기를 뜻하는 슈니첼(schnitzel)에 '비엔나'라는 수사를 자랑스럽게 붙였다.
돈코 여사는 "요즘은 송아지 고기 대신 돼지고기,동물성 기름 대신 식물성 기름을 많이 쓴다"며 "일본 사람들이 비엔나 슈니첼을 수입하면서 돈가스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엔나 슈니첼은 영어권으로 수출되면서 포크 커틀릿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일본인들이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문명을 닥치는 대로 소화해내면서 커틀릿을 가츠레츠로 음차하고 돼지라는 뜻의 돈(豚)을 붙여 돈가스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의 문명 재생산 능력은 탁월했다.
슈니첼에는 원래 소스가 없지만 일본인들은 케첩을 주재료로 돈가스 소스까지 개발했으니 '청출어람'이었다.
일본인들이 동양으로 실어나른 또 다른 오스트리아 메뉴는 비엔나 커피다.
빈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카페 문화로 발전했는데,단 음식을 좋아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이 도시 사람들은 예멘 모카항에서 수입한 진한 모카 커피에 휘핑 크림을 얹어 먹는 아인슈파네(Einspanner) 등을 즐겼다.
일본인들은 이 커피를 도입하면서 귀에 선 독일어 이름 대신 비엔나 커피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빈에서 비엔나 커피를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웨이터들은 눈썹을 치켜뜨며 못알아 듣겠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돈코 여사는 오스트리아의 선진 문명에 대해 "18세기 초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때는 전성기를 맞아 유럽 최초로 의무 교육 제도를 만들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에서는 대학까지 의무교육 혜택을 받는다.
그는 "빈이 국제적인 도시였던 만큼 오스트리아의 음식은 전 유럽의 특징을 두루 흡수하면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음식은 독일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동유럽 지방의 영향을 좀더 많이 받았고 특히 굴라쉬 수프를 포함해 헝가리 음식을 많이 수입했다.
돈코 여사는 "헝가리 굴라쉬는 파프리카를 듬뿍 넣어 약간 맵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양념을 절제해 담백하게 즐기는 게 차이"라고 말했다.
비엔나 슈니첼이 전 세계를 여행한 것 처럼 돈코 여사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도쿄로 유학을 갔다가 윌 헬름 돈코 현(現)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를 만나 이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해외 생활 20년 동안 상하이가 워낙 많이 달라지고 낯설어져 이제는 오스트리아가 더 고향 같을 지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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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