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씨 로비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김씨의 청탁 대상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힌 메모를 확보해 이들이 실제로 불법 로비에 연루됐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김씨에게 신동아화재 인수 로비를 부탁한 스칼라스투자평가원 원장 정모(41)씨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이 문건에는 김씨가 로비를 위해 접촉해야 할 경제부처 고위관료들의 명단과 개별 로비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정부 접촉' 대상자를 금감위와 예금보험공사, 재경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로 나눈 이 문건에는 기관별로 3∼4명씩 기재돼있다.

금감위에서는 2002년 6월 당시 금감위 부위원장의 이름과 실무를 맡은 J과장 및 L국장의 이름이 씌어있고 예보에서는 과거 선물옵션이사장을 했던 L사장, J고교 출신 J부장, 실무급 J부장 및 외국계 증권사를 담당하는 S과장이 등장한다.

재경원에서는 당시 차관의 이름과 B국장의 이름이 씌어있고 금융정책과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는 K대 출신 R국장과 W과장 및 민간 부문 K 위원장의 명단이 나온다.

이중 금감위 국장 L씨와 재경원 B국장의 이름 옆에는 `(김재록)'이라고 씌어있어서 정씨가 신동아화재 인수를 위해 특별히 이 두 관료를 상대로 집중 로비를 벌일 것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그런 문건들은 돌아다닐 수 있지만 `(로비)리스트'로 볼 수는 없다.

`누구에게 얼마를 줬다'는 내용이 기재돼야 `로비 리스트'로 볼 수 있다"며 이 문건에 등장하는 전현직 관료들을 당장 수사하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검찰은 김재록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영장 청구서에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신동아화재㈜ 등의 매각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관계 공무원'이라고만 적었을 뿐 이들의 신원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정씨와 김씨가 이 고위 관료들의 이름을 써가며 정관계 로비를 의논했다 하더라도 실제 로비가 이뤄졌는지는 미지수이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재록씨가 당초 정씨에게 신동아화재 인수로비를 부탁받을 때는 15억원을 약속받았지만 이중 1억5천만원만 받은 점이나 신동아화재 인수로비가 결국 실패한 점 등에 비춰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은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 관료들에게 로비자금이 실제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김재록씨와 인베스투스글로벌 및 김씨 주변 인물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씨가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등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정씨에게 접근했을 것으로 보고 김재록씨 로비의혹 규명을 위한 계좌추적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씨가 경제부처 전관(前官)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각종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김재록씨 로비 의혹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