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의 초대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98년)는 대세 판단이 정확하고 기민한 정치가였다.


프러시아 총리였을 때 이웃 오스트리아를 약올려 전쟁을 일으킨 후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 편에 붙은 주위 봉건 제후들을 한꺼번에 대파하는 방법으로 독일을 통일했다.


그는 유럽 최강국 독일의 급작스러운 출현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당시 유럽 정세를 이렇게 예단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땅을 선점하는 자가 유럽을 지배할 것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유럽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20세기 초 중앙 유럽에선 세 나라와 맞붙어 있던 체코와 슬로바키아 땅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실로 중대한 문제였다.


때문에 특히 둘 중에서도 약체였던 슬로바키아는 주변 강대국들의 부침에 휘둘려야 했다.


헝가리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1918년 체코에 반강제적으로 합병됐고 나치 독일의 짧은 점령을 거쳐 다시 소련에 복속(服屬)됐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만난 파벨·비에나 흐르모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부부는 "아우가 형(체코)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며 새롭게 부흥기를 맞고 있는 슬로바키아 경제의 활력을 얘기했다.


흐르모 대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슬로바키아에 기아차 폭스바겐 시트로앵 공장이 들어서 10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고 말했고 대사 부인은 "기아차 공장이 있는 질리나가 내 고향"이라며 "고향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반가워했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분리,2004년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유럽의 새로운 자동차 생산 허브로 부상 중이다.


정말 오랜 만에 찾아온 도약의 기회다.


체코와의 70여년 동거는 같은 슬라브 계열이라는 인연과 전통적인 우호 관계 덕분에 대체로 순탄했지만 슬로바키아는 그 안에서도 인구와 자원 면에서 체코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척박한 지형도 이유다.


평야가 많은 체코와 달리 슬로바키아는 중앙 이북이 모두 산이다.


이런 환경은 식단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슬로바키아인들의 전통 식단은 산짐승,감자,양배추가 중심이다.


과거 슬로바키아인들은 양 멧돼지 사슴 토끼를 산에서 잡히는 대로 투박하게 조리해 먹었다.


양념으로는 붉은 후추,주니퍼,월계수 잎,레드 와인을 쓴다.


흐르모 여사는 "건강에 신경 쓰는 요즘 사람들은 슬로바키아의 전통 식단을 고지방이라는 이유로 기피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산짐승 요리는 여전히 슬로바키아인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이 지역 명물이다.


슬로바키아의 특산물인 산양 치즈도 이 산의 선물이다.


산양 치즈는 할루슈키(Halusky) 같은 음식을 통해 슬로바키아와 체코 음식을 차별화한다.


감자를 갈아 넓게 부치고 위에 산양 치즈와 베이컨을 뿌려 만드는 할루슈키는 체코에선 볼 수 없는 음식으로 흐르모 부부의 늦둥이 외아들 파벨 주니어(15)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훤칠한 키에 조숙한 매너를 갖춘 파벨 주니어는 "엄마 요리 솜씨가 워낙 좋기 때문에 친구들이 방과 후 맥도날드에 우르르 몰려갈 때도 나는 밥 먹으러 집에 온다"고 엄마를 치켜세웠다.


감자를 갈아 넓게 부치는 것까진 우리 감자전과 비슷한데 치즈와 베이컨을 올리니 토마토 페이스트를 뺀 감자 피자와 비슷해진다.


엄마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는 파벨 주니어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흐르모 여사가 소개한 요리는 사우어 크라우트(양배추 절임)와 소시지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 카푸스트니카(KAPUSTNICA) 수프와 슬로바키아식 감자전 하룰라(Harula)다.


하나같이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의 솜씨와 정성이 녹아 있었다.


양배추를 발효시켜 케러웨이 같은 향신료를 섞은 사우어 크라우트는 야채가 귀한 지역에서 김치처럼 먹는 음식으로 가볍고 새콤한 맛이 돼지 고기의 무거움과 느끼함을 중화시킨다.


하룰라는 감자를 갈고 마늘 계란 밀가루를 섞어 넓게 지진 후 채썰어 볶은 돼지고기 파프리카 양파 칠리를 얹어 먹는다.


우리 감자전과 비슷하지만 보다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정성이 흠뻑 들어간 음식은 뭔가 다르다.


마음까지 배 불러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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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푸스트니카 양배추 수프 만들기 >


○재료(6인분)=사우어 크라우트 2캔,돼지고기 1kg,스모크 소시지 2개,말린 버섯,파프리카 가루,세이(허브류) 잎,검은 후추,생크림(모두 적당량),양파 1~2개


○만들기=①양파를 잘게 썰어 파프리카 가루와 함께 기름에 볶는다.


②사우어 크라우트와 물을 넣는다.


③고기,소시지,버섯,세이리프,블랙 페퍼를 넣는다.


④고기가 익으면 생크림을 넣는다(냄비가 4ℓ일 때 생크림은 0.2ℓ 분량).


⑤맵게 먹으려면 고춧가루를 추가한다.


*사우어 크라우트 캔과 세이 잎은 백화점 수입 식품 매장 등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