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한경 포럼] 연금의 딜레마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920년대 미국 보스턴에 찰스 폰지라는 사기꾼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돈을 맡기면 3개월 후 2배로 불려 준다며 사람들을 모았다. 사업은 순식간에 번창했다. 그는 아무 사업도 벌이지 않았지만,계속 몰려드는 투자자들이 맡긴 돈으로 먼저 투자자들의 몫을 지불한 뒤 나머지는 챙겼다. 그의 사기수법은 1년도 못돼 들통나면서 철창신세를 져야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미국에 연금제도가 도입됐다. 정부가 젊은 세대로부터 돈을 걷어 퇴직세대를 부양하고,그 세대가 늙으면 다음 세대가 책임지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폰지의 수법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연금제도는 잘 굴러갔다. 노인은 적고 젊은 사람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드러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이 급증하고,연금재정은 파탄에 직면했다. 1983년 1차 개혁을 통해 연금액을 줄이고 수혜연령을 높였지만 미봉책(彌縫策)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한 세대가 그 윗 세대를 부양하는 전통적 연금제도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젊은 인구가 많고 노령층이 적은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노인인구가 늘어 이 피라미드가 깨지면 버틸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1988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월수입의 3%를 내고 소득의 70%를 연금으로 받는다'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폭탄을 안았던 셈이다. '이게 아니다' 싶었던 정부는 98년 더 걷고 덜 받는 식의 제도개편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연금부도(不渡)의 시계바늘이 째깍거리자 다시 '더 내고 덜 받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지만 4년째 표류상태다. 표가 떨어질 것을 겁낸 정치권이 미적거리고만 있는 탓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발등의 불이라는데 이론(異論)의 여지는 없다. 노후를 보장한다는 정부 말만 믿고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온 국민들로서는 억울하지만,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라도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정을 너무나 잘 안다. 솔직히 국민들이 짜증스러운 것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아니라,공무원이나 군인연금,사학연금 등 '특수연금'과 너무 다른 대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40년을 부어야 가입기간 평균임금의 60%를 받지만 공무원은 20년만 가입해도 퇴직 전 3년 평균월급의 50%를 받는다. 국민연금은 낸 돈의 2배,공무원연금은 3.5~4배,군인연금은 6배까지를 받는다. 물론 보험료를 더 냈으니 연금을 더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낸 돈의 몇 배나 되는 연금을 주느라 재정이 거덜나고,부족분을 국민의 혈세(血稅)로 메워주는 현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 군인연금은 1977년 기금이 바닥나 올해에만 9200여억원,93년 고갈된 공무원연금은 8400여억원을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은 쪼그라드는 마당에 '철밥통'들의 구멍난 연금까지 대느라 봉이 되고 있으니 국민들은 복장 터질 노릇인 게다. 유시민 복지부장관의 선(先) 특수연금 개혁론은 그래서 과녁을 제대로 잡았다. 아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격이지만, 특수연금 개혁이야말로 국민연금 개혁의 첫단추를 꿰는 일이다. 특수연금 개혁없이 국민연금 개혁은 그 자체가 '폰지의 사기극'과 다름없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엄마의 선물 [권지예의 이심전심]

      최근에 사진을 잘 찍는 선배 작가가 불타오르는 절정의 단풍부터 낙엽 지는 만추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단톡방에 보내줬다. 감성 돋는 그 정경을 보며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던 차에 지난 주말에 받은 사진 한 장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사위어가는 석양빛을 받으며 커다란 나목의 가지에 딱 한 장의 나뭇잎만 매달려 있는 사진이었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어느새 긴 겨울 소멸의 시간으로 들어선 세월의 허무함이 잠시 밀려왔다.그런데 거의 동시에 다른 작가의 톡이 올라왔다. ‘오늘 새벽에 아버지께서 가셨어요.’ 그의 아버지가 오래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친정집에 7년째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 2010년 발병한 암으로 수술만 세 번, 그 후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수술과 척추 골절로 총 유병기간이 15년이 넘은 어머니.아주 오래전 11월 말, 인생에서 가족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의연하게 암투병을 하던 꿈 많은 여고생 동생에게 끝내 ‘마지막 잎새’의 기적은 없었고, 죄 없는 생명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인디언의 달력에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내 슬픔을 치유해준 것은 8할이 그 말이었다. 당시 갓 마흔이 넘은 어머니는 아픈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죄로 아플 때 아프다는 말을 절대 내뱉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건 어머니 스스로가 정한 일종의 속죄였을까.“걔만 생각하면 난 아픈 게 세상에 하나도 없다.”어머니에게 아픈 손가락, 아니 차라리 그건 진통제였다. 여동생이 죽은 지 40년이 된 날에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2. 2

      [천자칼럼] GM 철수설

      한국GM(옛 대우자동차)이 ‘철수설’에 시달린 지도 10년이 넘었다. 2002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된 한국GM은 소형차·준중형차 개발·생산 허브로 성장해 2013년 영업이익이 1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GM이 2014년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면서 이 지역에 차를 공급해 온 한국GM 생산 물량이 급감했다. “2016년까지 한국 생산량 20% 축소”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당시 보도가 나오자 철수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철수설은 2017년에 또다시 불거졌다. 직전 3년간 총 2조원 규모 순손실을 낸 데다 그해가 GM이 약속한 “15년간 경영 유지”의 마지막 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GM은 호주 러시아 등 수익성이 낮은 시장에서 실제 철수했다. GM은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인천 부평·창원 공장을 구조조정했다. 2018년 정부는 한국GM에 공적자금 8100억원을 추가로 넣었고, GM은 ‘최소 10년’간 한국 생산을 유지하기로 했다.6년이 지난 지난해부터 철수설이 또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한국GM은 대미 수출 물량으로 최근 3년 연속 흑자를 냈지만 이 기간 내수 비중은 3~5%에 불과했다. 여기에 올해 초 부평공장 유휴부지와 전국 9개 직영 정비센터를 팔기로 하면서 철수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무엇보다 한국 특유의 친노조 정책과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는 분위기다. GM 글로벌 사업장 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 생산 차질을 빚거나 노사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최고경영자(CEO)가 불법 파견 관련 혐의로 노조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급기야 그제 국회에서 ‘철수설을 넘어 지속가능한 한국지엠 발전방안 마련

    3. 3

      [사설] "AI 해킹에 국가보안망 무력화 시간문제"라는 섬뜩한 경고

      인터넷 시대에 구축한 낡은 보안 시스템으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해킹 공격을 당해낼 수 없다는 섬뜩한 경고(한경 12월 5일자 보도)가 나왔다. 국내 최고의 해킹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비해 방어 능력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급증하는 AI 해킹을 막을 방어선을 새로 구축하지 않으면 핵심 국가보안망이 뚫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도 했다. 쿠팡의 3370만 명 개인 정보 유출 사건과 SK텔레콤, KT 등의 잇따른 해킹 사고를 보면서 국민 대다수가 가진 불안감이 이제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는 얘기다.민간 기업은 물론 공공부문을 겨냥한 AI 해킹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 등이 신고한 사이버 침해 사고는 1034건으로 하루 평균 5.7건에 달했다. 신고하지 않았거나 해킹 사실을 모르는 사례를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공공기관 대상 해킹도 상상 이상이다. 공무원이 업무할 때 쓰는 행정 전산망인 온나라시스템이 3년 가까이 해킹당한 사실이 지난 10월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줬다. 공공기관 해킹 시도가 2023년 하루 평균 162만 건에 달했다는 국가정보원 분석도 나와 있다.AI 분석으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보안 시스템의 구멍을 더 쉽게, 더 빨리 찾아내는 세상이 됐다. 사이버 공격을 위한 준비 시간이 기존 16시간에서 불과 5분으로 단축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방어하는 쪽에선 그만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다. 여기다 외부 인터넷망과 내부 업무망을 분리한 우리나라 특유의 망 분리 시스템이 오히려 체계적인 보안 대응을 어렵게 하는 만큼 AI 해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