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6:56
수정2006.04.08 21:28
1920년대 미국 보스턴에 찰스 폰지라는 사기꾼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돈을 맡기면 3개월 후 2배로 불려 준다며 사람들을 모았다.
사업은 순식간에 번창했다.
그는 아무 사업도 벌이지 않았지만,계속 몰려드는 투자자들이 맡긴 돈으로 먼저 투자자들의 몫을 지불한 뒤 나머지는 챙겼다.
그의 사기수법은 1년도 못돼 들통나면서 철창신세를 져야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미국에 연금제도가 도입됐다.
정부가 젊은 세대로부터 돈을 걷어 퇴직세대를 부양하고,그 세대가 늙으면 다음 세대가 책임지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폰지의 수법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연금제도는 잘 굴러갔다.
노인은 적고 젊은 사람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드러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이 급증하고,연금재정은 파탄에 직면했다.
1983년 1차 개혁을 통해 연금액을 줄이고 수혜연령을 높였지만 미봉책(彌縫策)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한 세대가 그 윗 세대를 부양하는 전통적 연금제도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젊은 인구가 많고 노령층이 적은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노인인구가 늘어 이 피라미드가 깨지면 버틸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1988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월수입의 3%를 내고 소득의 70%를 연금으로 받는다'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폭탄을 안았던 셈이다.
'이게 아니다' 싶었던 정부는 98년 더 걷고 덜 받는 식의 제도개편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연금부도(不渡)의 시계바늘이 째깍거리자 다시 '더 내고 덜 받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지만 4년째 표류상태다.
표가 떨어질 것을 겁낸 정치권이 미적거리고만 있는 탓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발등의 불이라는데 이론(異論)의 여지는 없다.
노후를 보장한다는 정부 말만 믿고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온 국민들로서는 억울하지만,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라도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정을 너무나 잘 안다.
솔직히 국민들이 짜증스러운 것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아니라,공무원이나 군인연금,사학연금 등 '특수연금'과 너무 다른 대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40년을 부어야 가입기간 평균임금의 60%를 받지만 공무원은 20년만 가입해도 퇴직 전 3년 평균월급의 50%를 받는다.
국민연금은 낸 돈의 2배,공무원연금은 3.5~4배,군인연금은 6배까지를 받는다.
물론 보험료를 더 냈으니 연금을 더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낸 돈의 몇 배나 되는 연금을 주느라 재정이 거덜나고,부족분을 국민의 혈세(血稅)로 메워주는 현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 군인연금은 1977년 기금이 바닥나 올해에만 9200여억원,93년 고갈된 공무원연금은 8400여억원을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은 쪼그라드는 마당에 '철밥통'들의 구멍난 연금까지 대느라 봉이 되고 있으니 국민들은 복장 터질 노릇인 게다.
유시민 복지부장관의 선(先) 특수연금 개혁론은 그래서 과녁을 제대로 잡았다.
아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격이지만, 특수연금 개혁이야말로 국민연금 개혁의 첫단추를 꿰는 일이다.
특수연금 개혁없이 국민연금 개혁은 그 자체가 '폰지의 사기극'과 다름없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