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리와 형식‥임윤철 <기술과가치 대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임윤철 < 기술과가치 대표 ynchlim@technovalue.com >
주 5일제를 하면서 양복을 안 입는 날이 자연히 많아졌다. 양복을 안 입으면 왠지 마음도 편해지고,새로운 아이디어도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학생시절 교복을 입던 때,군대에서 군기 꽉 잡힌 군복을 입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만큼 형식이 우리의 사고 틀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면 과감히 다른 옷을 입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기술혁신은 연구개발 과정과 기술사업화 과정,두 가지가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내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즉,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을 생산하는 과정과 이것으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파는 과정이 모두 잘 이루어져야 성공적인 기술혁신이 된다. 기술혁신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기술혁신에서 기술의 기여도를 20% 정도라고 생각하면 기술사업화 과정의 기여도는 80%가 된다.
정부는 지난 30여년간 연구개발 과정에 집중 노력하였다. 과학기술분야의 9조원 가까운 정부예산 대부분이 이 과정에 투입되고 있다.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으며,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많은 박수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이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정부는 연구개발 과정을 주관하면서 연구개발 효과성 제고라는 실리추구보다는,감사원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한 절차와 명분,형식에 치우치는 것처럼 보인다.
소수 전문가들이 책임지는 의사결정보다는 공동책임 형식의 의사결정에 의존하고,연구과제 선정시 산업·제품 전문가보다는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는 경향이 있으며,선택과 집중보다는 형평이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작은 예산규모를 여럿에게 나눠주는 방식을 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부터 정부는 기술사업화 과정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과정에 필요한 활동들은 기술마케팅,기술이전,기술금융,생산화,제품마케팅 등으로 연구개발활동과는 다른 성격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 활동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연구개발 과정에 적용된 '형식'을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술사업화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연구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주체가 아니라는 점과 이 과정에 소요되는 활동들이 연구개발활동과는 아주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를 잘 수행할 주체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공조직이 기술사업화의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활발히 활동하는 기업조직이 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실리를 위해서 새로운 형식의 옷이 필요하고,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