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공산주의자이다. 1942년 출생한 그는 공산혁명에 직접 참여한 세대가 아니다. 학창시절 철저한 공산주의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로 성장했다. 때문에 후 주석이 이전 지도자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 열렸던 전인대(全人大,의회)는 그가 그리고 있는 중국정치의 큰 그림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후 주석이 제시하는 중국의 길은 무엇일까. 그가 이번 전인대에서 제기한 '8가지 영광, 8가지 치욕(八榮八恥)'에서 그 해답을 얻게 된다. 그는 조국사랑, 인민봉사, 과학숭상, 근면노동, 단결협조,성실신의, 규율준수, 분투노력을 8개 영광으로 설정하고 그 반대를 치욕으로 규정했다. '八榮八恥'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공산당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978년 덩샤오핑이 주도했던 개혁개방은 문화대혁명으로 표현된 마오쩌둥의 고립주의적 모험주의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됐다. 덩은 대외에 문을 활짝 열었고,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先富起來)라는 말로 불균형성장을 용인했다. 장쩌민 주석은 한발 더 나아가 헌법을 바꿔 사유재산을 보호하고,사영기업 외자기업 등의 활동영역을 넓혀줬다. 도시 중심의 성장제일주의는 사회적 문제를 잉태했다. 도농불균형, 빈부격차, 부정부패, 투기만연 등의 문제는 이제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결국 도덕재무장 운동을 통해 '사회풍기문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八榮八恥'의 뜻이다. 후 주석의 도덕재무장운동은 사회주의 순수성과 애국주의, 인민에 대한 무한한 봉사, 공동발전 등을 강조한 마오의 이념을 많이 닮았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신농촌운동은 농촌을 중시했던 마오의 노선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기에 후 주석이 마오쩌둥 통치스타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후 주석이 마오 시절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 주석은 지금도 개혁개방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후진타오 체제가 일부 계층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덩샤오핑 식 성장제일주의 노선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마오쩌둥 스타일의 계급투쟁식 발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덩샤오핑의 성장제일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인 셈이다. 후 주석의 '제3의 길'은 균형성장, 사회도덕, 중화(中華)주의 등을 강조하고 있다. 농촌 등 소외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강화되고 있고, 외국자본 등 특수 집단에 대한 특혜 폐지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성장우선주의에서 통했던 탈법관행, 환경파괴, 관시(關係) 비즈니스 등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한편으로는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적극적인 대외정책도 예상된다. 지난 25년여 경제성장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던 중국은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대(對) 중국 정책 및 비즈니스도 후 주석이 제시하고 있는 '제3의 길'에 호흡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우덕 상하이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