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사거리는 오래된 상권이다.


서민들의 요기를 채우던 순대촌이 지하철 2호선 신림역 개통과 함께 지역중심 상권으로 발전해 온 지 20년이 넘었다.


신림역 이용 인구만 하루 12만명.평일 오후 5시면 귀가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의 파도가 좁은 인도를 가득 메운다.


"경기 영향만 빼면 큰 이변 없는 상권이죠." 7년째 이곳을 지키는 고향솥뚜껑삼겹살의 김재출 사장은 신림 상권을 '대박도 쪽박도 아닌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 : 신림동 상권은 관악, 구로, 동작구 등에 거주하는 대학생과 고시생, 직장인들이 모이는 서울 서남부 핵심 상권으로 순대 타운을 비롯한 외식업이 특히 발달해 있다. 사진은 신림역 3,4번 출구 먹자골목. ]


권리금 1억원,보증금 1억원 포함,2억6000만원을 들여 5번 출구 이면에 재오픈한 가게는 한 달에 500만원 정도 순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풍부한 유동인구만 믿고 들어오면 큰 일 난다고 충고한다.


"한 퇴직공무원이 3억원을 투자해 불닭집을 열었다가 유행이 지나자 2억원도 못 건지고 나갔죠.특히 순대타운 먹자골목은 음식점이 포화상태라 정신바짝 차려야 됩니다."


3,4번 출구로 모이는 10,20대들에겐 순대 닭갈비 삼겹살 등 푸짐하고 저렴한 음식이 딱이다.


놀부 부대찌개 김미영 팀장은 "강남 체인의 평균 객단가(1인당 소비액)가 3700원인 데 반해 학생 위주인 이곳은 2850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새로운 시도가 없진 않다.


캘리포니아롤 전문집 '캘리롤'은 젊은층의 입소문을 타고 3년째 성업 중이다.


신림에서 한접시 1만원짜리 메뉴가 통할까 걱정했다는 이재영 조리장은 "술말고 밥만 파는 곳은 분식집 정도가 전부라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차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번 출구 샤브샤브집 '할매집'은 뜨내기보다 붙박이 주민층을 공략해 성공한 케이스. 김용익 지배인은 '신림동 수준'을 강조했다.


"메뉴판에서 '런치'를 '점심'으로,'DC'를 '할인'으로 바꿔야 했죠. 신림동은 오피스가 없어 음식이나 접대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거든요." 부족한 점심 수요는 쾌적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조성해 해결했다.


오래 머물기 좋아하는 30~40대 주민들을 끌어들인 것. "3개월 전 중식당 '아리차이'도 오픈했습니다.


4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보고 '몇 인분이냐'고 묻는 이곳 수준에 맞춰 3만원짜리 2인분 세트를 추가하고 가격도 재조정했죠."


금요일 밤 11시30분 신림본동 파출소.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와서 나이트클럽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신원조회 좀 해주세요." 시흥에서 온 이효원씨(22)가 사정 중이다.


"최근 소주나이트클럽으로 바뀌고 나서 2만~3만원만 있으면 춤추고 부킹까지 할 수 있죠. 나이트클럽에서 놀고 순대타운에서 배를 채우다보면 새벽이 금방 가요."


나이트클럽 두 곳이 있는 3,4번 출구는 버스 막차가 떠난 12시30분에도 20대들로 부산하다.


7번 출구 나이트 앞에서 토스트 노점을 하는 이금자씨(61)는 덕분에 새벽 5시까지 피곤을 참는다.


새벽 2시 반.잠시 조용했던 순대타운 1층에도 다시 손님들이 들어온다.


전창호 지배인은 "평일 새벽은 50팀 정도 오고 주말은 나이트클럽과 심야영화 때문에 두 배가 넘는다"고 전했다.


맛집과 유흥 위주의 신림 상권도 변화 중이다.


2년 전 7번출구에 14층짜리 르네상스 쇼핑몰과 영화관이 자리잡으면서부터다.


8층 프리머스영화관의 정혜영 팀장은 "평일 저녁은 퇴근하는 직장인,주말은 20대 커플들이 주고객"이라고 말했다.


씨티부동산의 권용훈 대표는 "6번 출구에 두 배 규모의 쇼핑몰과 영화관이 들어설 계획"이라며 "3년쯤 후에는 보라매공원 방면 북쪽 상권에도 젊은층이 많이 오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새로운 조짐은 2번출구 두산위브 지하 GS문고에서도 느껴진다.


작년 7월에 오픈한 후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장호 팀장은 "건물 현관에 휴식공간을 두고 보도블록을 개선하면서 3번출구에 집중된 유동인구가 이곳으로 유입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유아,어린이 부문 매출 비중이 다른 지점에 비해 5~7% 높지만 근처 서울대생이나 고시생의 매출기여도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교보부동산 김순자 실장은 "아데나타워가 들어서면 2번 출구에도 젊은 층 발길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웃상권은 어떨까.


개발이 늦었던 서울대입구역(봉천사거리) 상권은 "1년만 기다려라"를 외친다.


호프집 해리피아 서울대점의 위오섭 사장은 "관악구청 리모델링이 끝나고 대형 쇼핑몰과 CGV가 9월에 오픈하면 신림역 상권 버금가지 않겠느냐"며 "지금 사정이 어렵다고 철수하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 것 같아 견디는 중"이라고 말했다.


프로부동산의 이병훈 실장은 "강남 출근 직장인들이 신림동보다 가까운 봉천동에서 집을 찾는다"면서 "오피스도 많아 앞으로 신림동보다 구매력이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림역에서 버스로 10여분 들어가는 고시촌 상권(신림9동)은 위축되고 있다.


민속주점 '나살던고향'의 김진호 지배인은 "교육 지구라서 나이트클럽같은 유흥업소가 못 들어온다"며 울상을 지었다. 영일부동산의 이재선 대표도 "서울대생들이 신림동과 봉천동의 원룸으로 이동하면서 이곳 유동인구가 30%는 줄었다"고 전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