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위기에 어느 간 큰 공무원이 골프를 치겠어요. 골프는 당분간 잊을 생각입니다. 대신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를까 해요."(산업자원부 A 국장)


국가청렴위원회가 '직무관련자와의 골프 금지령'을 내린 후 첫 주말을 앞둔 24일 정부 과천·중앙청사에 근무하는 고위직 공무원의 상당수는 토요일(25일)과 일요일(26일)에 잡아 놓은 골프 약속을 서둘러 취소하느라 진땀을 뺐다.


일부 공무원들은 감사관실 등의 골프를 치기로 약속한 동반자들이 '직무 관련자'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유권해석을 받는 등 골프 강행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성수기를 맞은 데다 공무원이 빠진 자리가 다른 민간인으로 채워지면서 당초 예상과는 달리 골프장에서 부킹(예약) 취소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골프장 대신 산으로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은 "대학 동창들과 분기별로 갖는 골프모임이 예정돼 있었는데 아무래도 찜찜해 친구들에게 '못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며 "직무 관련성 여부를 떠나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골프를 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산업자원부의 한 간부도 "청렴위 발표 이후 다음 달까지 잡힌 골프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며 "과거에도 이런 골프 금지령 이후 '시범 케이스'에 걸리면 혼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예 골프를 잊고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A팀장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 골프 회동에 자신은 빠지겠노라고 말했다.


동반자 중 은행권 인사가 끼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일부 공무원은 자기가 빠지는 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하는 등 한 팀(4명)이 유지되도록 멤버를 조정하느라 분주했다.


2~3개팀의 단체 골프 모임을 계획했던 공무원들은 아예 골프 대신 산행으로 바꾸기도 했다.


◆'구시대적 발상'이란 불만 많아


공무원들 사이에선 골프 금지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이해찬 전 총리가 문제됐다고 모든 공직사회에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아직도 우리나라가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특히 직무 관련성에 대한 해석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것에 대한 불평도 컸다.


또 다른 간부는 "공무원이란 이유 때문에 골프도 맘대로 못 치고,눈치를 봐야 하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이 같은 골프 자제 움직임은 '쇼'에 불과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대관 업무가 많은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당분간 골프를 자제하겠지만 장기적으로야 그게 지켜지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골프장은 여전히 부킹난


스카이72 레이크사이드 태광 썬힐 천안상록 뉴서울 88CC 등 수도권 일대 골프장에는 이번 주말 예약 취소가 거의 없었다.


이는 공무원들이 라운드를 취소하더라도 동반자들이 빈 자리를 채운 후 라운드에 나서기 때문이다.


2∼3일 전 갑작스레 부킹을 취소할 경우 다음 번 예약할 때 불이익을 주는 국내 골프장의 규정도 취소 사태를 막은 요인으로 분석됐다.


오히려 일부 골프장에는 공무원들의 예약 취소를 기대하고 '빈 자리'가 없느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천안상록의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주말 부킹을 취소한 게 있으면 그 시간을 쓸 수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고 말했다.


차병석·정지영·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