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정부의 대기업 규제는 투자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심각한 폐해가 있을 경우에만 제재를 가하는 '사후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가 바람직한 소유지배구조로 내세우고 있는 '지주회사'도 다른 지배구조보다 더 낫다는 이론적·실증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국내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여전히 아시아 주요 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어서 추가적인 법인세 인하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자율성 최대한 허용해야 정인석 한국외대 교수는 23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규제개혁 관련 보고서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대기업 규제는 '사전 규제'의 성격이 강해 기업의 사업과 투자활동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의 특정한 투자행위가 사회 전반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무조건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진단이다.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도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로 인해 특정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시장에 다른 기업이 끼어 드는 것이 원천 봉쇄되는 '반(反) 경쟁적'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대기업 관련 '사전 규제'를 '사후 규제'로 돌리고 가능한 한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투자 부진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권고했다. ◆지배구조의 정답은 없다 국내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유도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정 교수는 "정부가 특정한 소유지배구조를 바람직한 것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정책목표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지주회사 체제가 기존의 지배구조보다 성과가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고 비판했다. 어떤 지배구조가 가장 바람직한지는 시장의 성격,기업문화,경제성장의 역사 등에 따라 해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유 집중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례는 많다"며 "(지주회사 체제를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기업의 내·외부 감시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세부담 더 줄여야 국내 기업들에 적용하는 법인세율이 아시아 주요국보다 여전히 높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영 한양대 교수가 작성한 '조세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한계법인세율(기업의 이익이 1단위 증가할 때 늘어나는 세금 부담)은 29%로 홍콩·대만(각각 14%) 싱가포르(22%) 인도(23%) 필리핀(25%) 태국(26%) 말레이시아(26%)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한국의 법인세율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긴 했지만 앞으로도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