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北, 南언론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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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남측 도로출입사무소(CIQ)에서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채 안돼 금강산에 도착한다.
하지만 22일 13차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귀환 버스에 올랐던 우리 상봉단은 이 지척의 코스를 무려 12시간 만에 되밟아왔다.
심리적 거리는 혈연과 떨어져 살아온 수십년 세월만큼 멀었을 것이다.
북한이 고령의 상봉단을 볼모로 '납북'표현을 쓴 남측 기자를 내쫓으려 한데 따른 후유증은 23일까지 계속됐다.
통일부 기자단은 북한의 취재권 박탈에 항의하기 위해 13차 2진 이산가족상봉 보도를 위해 금강산에 남아 있던 기자단 22명을 전원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북한이 납북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12차 상봉 당시 이 표현을 썼을 때는 경고 조치에 머물렀던 것이 이번엔 북측 진행요원이 뉴스송출 현장에 들어와 뉴스를 사실상 검열까지 했다.
북한이 이토록 예민하게 나온 내막에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역대 장관 중 처음으로 납북자 송환 의지를 밝혔다는 사실이 있다.
납북자 가족모임 수치에 따르면 1955년 이래 무려 3745명이 북한에 피랍됐으나 북한은 이들이 납북된 것이 아니라 실종된 후 북한에 정착했거나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장관은 이제 납북자 송환 의지를 밝힌 이상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용어뿐 아니라 수많은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 것이다.
용어야 대수랴.살아있다면 길게는 반세기째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살고있을 납북자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그를 납북자가 아니라 실종자라 부른들 어떨 것인가.
기자들은 여론 수렴이 되고 협상에 이로울 경우 정체불명의 신조어 수용도 검토할 자세가 돼있다.
단지 북한의 변덕에 휘둘려 사전 합의된 취재권을 일방적으로 박탈당하는 약속 파기 행위가 거듭돼서는 안된다는 게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다.
이번 일로 북한 정부와 남측 언론의 신뢰 관계에는 금이 가고 말았다.
북측이 원하는 것이 정녕 남북 화해라면 남측 언론이 냉랭한 대북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북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