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뭐 한 게 있어? 지들이 잘한 거지." "선수의 장점을 살려주는 게 감독의 할 일이다." 한국야구를 세계 4강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겸손한 인품과 선수들에 대한 깊은 배려의 마음이 묻어나온다. 말만 들어도 그가 선수들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했는지,선수들의 장점과 자부심을 살려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가의 명예를 건 대표선수들간의 시합인만큼 엄격한 규율 아래 스파르타식 훈련을 거듭했을 것이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보기좋게 뒤집어 놓은 김 감독의 리더십 스타일은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서번트 리더십의 전형(典型)이 아닐까 싶다. 서번트 리더십은 미국의 로버트 그린리프라는 인물에 의해 1970년대 개념이 정립된 것으로 인간 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세심하게 구성원들을 섬기고 보살피면서 그들이 스스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 주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 요체다. 구성원들이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갖고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겉으론 일사불란해 보이지만 불만과 갈등이 내재되게 마련인 카리스마형 리더십과 대조된다. 서번트 리더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효용성이 입증된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월마트나 사우스웨스트항공 등은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한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기업이 반석 위에 올라선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포천 100대 기업 중에서도 관리자들에게 서번트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 3분의 1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하는 CEO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분식회계 여파로 화의 상태에 빠진 기업을 떠맡아 허심탄회한 대화와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실천하며 업계 선두권으로 끌어올린 모 종합상사 사장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자발적 충성심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는 서번트 리더십의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또 은행 보험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서번트 리더십의 실천을 다짐하는 CEO들이 줄을 잇는다. 참으로 모를 것은 정치지도자들이다. 서번트 정신이 가장 충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와는 가장 거리가 먼 까닭이다. 국민들의 형편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편한대로 처신하고 권위를 앞세워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국민부터 섬겨야 한다는 마음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면 어찌 산불이 나고 파업사태가 벌어지는데도 국무총리가 골프를 치겠으며 서울시장이 요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황제 테니스를 즐기는 일이 벌어지겠는가. 중국 전국시대 상승(常勝) 장군으로 불렸던 위나라 오기(吳起) 장군은 항상 최말단 병사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행군할 때 말도 타지 않았다고 한다. 병사의 다리에 종기가 생기자 직접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연저지인(口允疽之仁)이라는 고사성어까지 생겨나게 할 정도로 부하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각별했다. 이런 장군과 함께 하는 병사들은 전장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그는 76전 무패라는 불멸의 과업을 이뤄낼 수 있었다. 언제쯤이면 우리도 서번트 리더십으로 무장한 진정한 정치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