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7층에 위치한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의원의 사무실은 지난 17대 총선을 통해 입주한 이래 가장 붐비고 있다. 한 의원이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한 의원측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기자들과 당 관계자, 일반 방문객들의 왕래가 잇따르면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현재 의원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국회 통외통위 소속 의원들과 카자흐스탄에 머무르고 있는 한 의원도 이 같은 국내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21일 보좌진과의 국제통화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준비를 잘하고 있어라"고 당부할 정도로 국내 첫 여성재상 탄생이라는 전인미답의 상황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한 의원이 `여러가지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당 안팎에서는 한 의원이 자신이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우리당에서는 한 의원이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 자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당과 거리가 있는 인사가 총리로 임명되는 것보다는 당 출신 인사가 총리가 되는 것이 긴밀한 당정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보탬이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파별로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삶의 궤적상 한 의원이 재야파 쪽에 가까운 탓이다. ◇한 의원은 누구인가 = 한 의원의 이력에는 항상 `재야'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지난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사건으로 구속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는 점 때문이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양극화'로 진단한 강원룡 목사가 주도한 단체였다. 당시 이 사건에는 한 의원뿐 아니라 신인령(辛仁羚) 이화여대 총장, 이우재(李佑宰) 전 의원, 김세균(金世均) 서울대 교수도 연루됐었다. 또한 한 의원의 남편이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복역한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라는 점도 한 의원의 재야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측면이 강하다. 한 의원은 80년대에는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처벌법 등 여성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에 앞장섰으며, 지난 93년에는 진보적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이미경(李美卿) 의원과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한 의원은 16대 총선을 통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고, 2001년에는 여성부 초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한 의원은 17대 총선 직전 장관직을 사퇴한 뒤 우리당에 입당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홍사덕(洪思德) 전 의원을 제압하고 고양 일산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4.2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로 입성한 한 의원은 실용주의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공동발의하고, 과거사법에 대해서는 찬성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하는 등 재야성향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계파별 시각차 = 한 의원의 재야성향 때문인지 재야파를 제외한 당내 일각에선 한 의원이 총리로 임명되는 상황을 다소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한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의원이 당의 주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당내 일각에선 한 의원이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 및 유시민(柳時敏) 복지부장관과 이념적 성향이 비슷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의원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이 전 총리가 지난해 초에는 교육부총리 후보로 한 의원을 강력하게 추전했다는 소문은 이런 연장선이다. 한 초선의원은 4.30 재.보선 패배 이후 구성된 당 혁신위원회에서 한 의원과 유 시민 장관이 나란히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은 사실을 언급한 뒤 "한 의원과 유 장관이 4.2 전당대회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깝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 때문인지 한 의원측에서도 한 의원의 재야성향이 필요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한 의원의 한 측근은 "한 의원은 4.2 전당대회에서도 `중간지대'를 이야기하는 등 중립.중도적인 성향을 보여왔다"며 "당내 특정계파나 특정 인물과 가깝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한 의원이 구속된 크리스챤 아카데미사건은 한국사회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건강한 중간집단을 육성하고,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었지, 이념운동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