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춘분을 설날로 삼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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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내일이 춘분이다.
몇 십년 만의 3월 중순 꽃샘추위가 매섭던 기억이 엊그제인데,한 주일 만에 봄소식이 완연하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태양이 그 동안 떠있던 남반구를 떠나 북반구로 진입하는 날이 춘분이다.
그 동안 남반구 위에 있던 태양이 적도를 통과해 북반구로 들어온다.
그러니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날이라고도 한다.
오래전의 일이지만,나는 춘분을 설날로 삼자고 주장한 일이 있다.
그래서 해마다 개인적으로는 내일이 새해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새해의 시작으로 삼는 날은 너무 추울 때여서 새로 무엇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반감한다.
원래 새해의 시작을 정하는 규칙은 사람들이 사는 곳마다 서로 달랐다.
그러다가 그것이 통일되기 시작한 것은 거대한 전제국가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서양에서는 로마 때 그런 통일을 이뤘고,동양에서는 중국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통일되면서 역법도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약 2000년 전에서야 오늘과 비슷한 양력(서양)과 음력(동양)으로 각각 통일돼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서양의 양력도 그 후 약간의 변화과정을 거쳤고 동양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그래서 양력 1월 1일과 음력 설날은 각각 태어난 셈이다.
19세기 세상이 서양 주도로 바뀌면서 당연히 세계 각국은 양력으로 통일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1896년부터 양력을 공식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엉뚱한 일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두 가지 역법이 조화되지 못해 우스운 일이 반복되는 중이다.
양력 1월1일(신정)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인사를 하고는 한달 정도 뒤 설날(구정)에 다시 같은 인사를 반복하는 일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내가 춘분을 새해 시작으로 삼자고 주장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금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양력은 로마와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때 만들어지면서 그 나름의 역사성 때문에 괴이한 모순을 갖고 있다.
로마 때 역법을 수정하면서 엉뚱하게 황제의 생월(生月)을 하루라도 더 길게 한다는 욕심으로 7월(July) 8월(August)이 31일짜리로 길어지고,그로 인해 2월은 28일로 줄어들어 버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로마황제 이름을 7월(율리우스 카에자르,즉 시저)과 8월(아우구스투스) 동안 기념하며 살게 됐다.
또 그 역법의 오차를 수정하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1583년 고친 역법 덕택에 오늘의 1월1일이 확정됐다.
사실 오늘 우리가 함께 쓰게 된 양력은 모순투성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미 프랑스혁명정부가 역법을 고친 일도 있고,사회학의 아버지 오귀스트 콩트가 자기 역법을 주장하고 나선 일도 있다.
역법 고치기 운동은 계속돼,1950년대에는 유엔이 그 가능성을 논의한 일까지 있다.
찬성과 반대가 20표씩 동수여서 폐기되고 말았지만….줄기차게 개력(改曆)운동은 계속됐건만,이것이 마지막 노력이었다.
오늘날 새삼스레 춘분을 설날로 만들 도리는 없어 보인다.
너무나 복잡해진 국제관계,특히 금융질서 때문에 역법을 고칠 수는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마다 춘분만 되면 "이날이 설날이라면 얼마나 합리적일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1,3,5… 등 홀수 달은 30일로 하고 2,4,6… 등 짝수 달은 31일로 하되,12월 만은 평년 30일,윤년 31일로 하면 지금 달력의 모든 모순이 사라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박성래 역법(曆法)'은 실현될 수 없는 기록상의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세상은 '합리적=과학적' 방향으로만 가지는 못함을 확인하게 된다.
조금씩 수정할 수 있을지언정.근본적 개혁은 그만큼 어렵고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