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 LG환경연구원장 > 주총시즌이 되면서 또다시 기업의 경영권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포스코 회장은 직접 나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만나 자사 주식을 매입해 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라 한다. 이는 장차 경영권에 위협이 가해질 경우 이들 기관투자가가 나서 백기사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절박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기업도 이제 세계적 투기자본의 공격대상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어 적절한 대응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과 연기금을 비롯한 각종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전략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건전한 기금 운영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인가.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금융계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SRI)가 그것이다. 사회책임투자란 재무적 건전성뿐 아니라 윤리성 투명성 환경친화성 등의 관점에서 기업을 평가해 일정한 평가기준 이상의 기업만을 주식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2004년 6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글로벌협약 지도자 정상회의에서는 약 6조달러 상당의 투자자산을 관리하는 20개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모여 '재무분석,자산관리 등의 업무에 환경,사회 및 지배구조상의 쟁점들을 더욱 잘 통합시키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권고사항'이라는 문건을 채택한 바 있다. 재무분석,자산관리 서비스를 핵심 기능으로 하는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들이 투자대상 기업의 환경성 사회성,그리고 지배구조의 건전성 등을 기업의 파산위험과 직결되는 요소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좀더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겠지만 세계 초일류 금융회사들의 주도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우리 기업이나 투자가들의 고민을 상당부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첫째,사회책임투자는 높은 안정성과 적절한 수익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투자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연기금을 비롯해 공제조합 보험사 종교계와 같은 각종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투자자금의 조성 목적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윤리,환경,사회정의 등의 측면에서 두루 우수한 기업,즉 사회책임투자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대체로 재무성과가 좋고 경영상의 위험도 낮기 때문이다. 둘째,국제 투기자금의 공격에 노출돼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기여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에너지,철강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으로부터 전자,자동차와 같은 주력 수출산업에 이르기까지 대표 기업들 대부분이 높은 외국인 지분과 함께 경영권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연기금과 같은 대규모 공익자금이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따라 이들 기업의 지분투자에 참여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포스코와 같은 기업이 기대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셋째,기업경영의 건전성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책임투자가 시장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자연스럽게 사회성 환경성 경제성을 함께 고려하는 지속가능경영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지역사회나 시민단체가 나서서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거나 서로 반목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한편으론 연기금 운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부의 부적절한 민간기업 경영권 간섭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엄격한 평가기준과 공정한 운영방안을 전제로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한다면 우리 기업의 경영권 보호와 지속가능경영 확산은 물론 무분별한 주식투자로 깡통 연기금이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환경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