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구수증서(口授證書) 방식에 의해 '후처에게 전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지 이틀 만에 숨져 유족 간 분쟁이 발생하자 대법원이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란 자필증서나 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로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는 경우 2명 이상의 증인에게 유언을 불러주고 이를 받아 적은 증인이 낭독해 유언자의 서명이나 날인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14일 정 모씨(30·여) 등 2명이 "할아버지가 후처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한 유언장은 무효"라며 유언 집행자 나 모씨(49)를 상대로 낸 유언무효 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들의 할아버지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과 위암 등으로 위독하던 1998년 1월 병원 입원실에서 변호사와 회사 직원,운전기사 등이 입회한 가운데 구수증서 방식으로 회사 3개와 토지 건물 선산 예금 등 모든 재산을 후처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고 이틀 뒤 숨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이 유언 취지의 확인을 구하는 변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어'라고 말한 것만으로는 민법에서 정한대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망인은 병과 고령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식사도 못하고 부축 없이 일어나 앉지도 못했으며 큰며느리를 몰라보거나 천장의 전선을 뱀이라고 하는 상황이었다"며 "유언장을 작성한 경위나 후처 외의 유족을 상속에서 완전 배제하는 유언 내용에 비춰볼 때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의 유언 관련 조항들이 유언 방식을 엄격히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