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李海瓚) 총리가 14일 '3.1절 골프' 파문과 관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공식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후임총리 인선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할 조짐이다. 노 대통령이 골프 파문에 대한 청와대 참모진의 보고와 여당 지도부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쳐 결국 이 총리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서다. 물론 현 시점에서 이 총리의 후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현재 후임의 '후'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태의 본질이라 할 3.1절 골프의 성격을 비롯해 총리 거취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이 극도로 악화돼 이 총리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총리 유임 등의 '역발상'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여권내 지배적인 전망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이날 이 총리의 사의를 전달받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향후 국정기조와 직결되는 차기총리 문제에 대한 판단을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여권 내부에서 이 총리가 후임 환경부 장관 내정을 위한 제청절차까지 마무리짓고 사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현재 후임 문제와 관련해 유력하게 거론되거나 그려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되고 있다. 먼저 총리에게 일상적 국정운영을 맡기고 대통령 자신은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 등 미래과제에 전념하는 현재의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경우다. 이는 노 대통령이 올들어 양극화 해소를 국정의 중심과제에 두겠다는 뜻을 누차 천명했고, '일할 수 있는'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 데 따른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 총리의 '대안'을 찾는 것으로 향후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최종 판단이 선다면 후임자는 책임총리에 걸맞은 정치력과 리더십 등을 두루 겸비한 정치권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권 내에서도 안정적 정국 운영과 당.정.청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조기 레임덕 차단 등을 이유로 정치인 총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인이 기용된다면 김혁규(金爀珪) 한명숙(韓明淑) 의원을 우선 그려볼 수 있으나 김 의원은 당장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반발과 중앙정부에서의 행정경험 부족이 부담이고, 한 의원은 여성이란 장점이 있지만 집권 후반기의 관료사회를 장악해서 끌고갈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여당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를 거치면서 정책적 역량과 리더십을 쌓은 정세균(丁世均) 산업자원부 장관의 발탁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은 특히 여권의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 출신인 데도 상대적으로 영남에서의 거부감이 적은 데다, 노 대통령이 인정한 '차기 지도자군'의 한 사람으로서 정동영(鄭東泳)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최고의원 등 갈수록 차기 대권주자에게 쏠릴 여권 내부의 힘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여권 핵심부에서 사람을 찾되 정치색이 엷은 정책통을 기용한다면 김병준(金秉準)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다. 그간 여당과의 가교 역할을 해온 데다 대선캠프에서부터 노 대통령의 브레인 역할을 해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핵심 과제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 대통령이 이 총리 파문을 계기로 분권형 국정운영의 틀을 바꿔 '직할체제' 강화로 내각에 대한 장악력을 끌어올리려 한다면 '비정치인'이 등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노 대통령의 중.장기 국정운영 기조가 일정부분 궤도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어도 선거 중립내각 카드를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과도 맥이 닿는다. 그럴 경우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과 박봉흠(朴奉欽)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검증된 관료 출신들이 유력 후보군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호남 출신으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전 원장은 중량감과 추진력,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박 전 실장은 기획력과 장악력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색이 완전 배제된 순수 '관리형'으로 간다면 현 대한적십자사 총재인 한완상(韓完相) 전 부총리처럼 무색무취하면서도 개혁성향을 띤 인사가 후보군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일각에선 여권의 '제3의 후보' 띄우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민운동가인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나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총장을 차기 총리감으로 거명하고 있으나 다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현실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 외에 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인 문국현(文國現) 유한킴벌리 사장이 예상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