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3.1절 골프파문'과 관련된 이해찬(李海瓚) 총리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수차례 급박한 기류변화를 겪은 끝에 결국 `사퇴불가피론'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만하더라도 이 총리의 사퇴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비쳤다. 우리당 내부에서 "이대로는 지방선거를 치르지 못한다"는 총리교체론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이 총리가 지난 5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해 스스로 거취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내 재야파와 친노직계 의원들이 이 총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서면서 이 총리의 거취 문제가 미궁에 빠졌다. 특히 7일 이병완(李炳浣) 청와대 비서실장 등 복수의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잇따라 "총리가 사퇴하면 그동안의 국가 정책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 총리의 유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인사권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중장기적 국정운영을 위해 귀국 후 유임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총리 스스로도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분석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 총리의 거취를 놓고 당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정 의장은 `함구령'을 내리면서 교통정리에 나섰다. 정 의장은 8일 당의 회의에 참석해 "대통령이 귀국 후에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실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개인적인 의견 표명을 극력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함구령을 내린 바 있다.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던 당 지도부의 태도가 반전된 것은 정 의장이 지난 9일 노량진의 한 홍어전문 식당에서 주재한 최고위원 만찬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만찬에서 최고위원들은 공개된 것과는 달리 이 총리의 3.1절 골프가 교원공제회의 영남제분 주식투자 논란 등으로 확산된 데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찬을 계기로 이 총리에게 우호적이었던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까지 기존의 입장을 바꿨을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후문이다. 재야파의 한 관계자는 "김 최고위원은 9일 만찬 회동에서 사퇴론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이후 지난주 후반부터 사퇴불가피론으로 기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각 계파의 입장이 어느정도 통일이 되자 당 지도부는 발빠르게 사퇴불가피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정 의장은 10일 당의 회의에서 "앞으로 바닥의 민심을 잘 새겨듣고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잘 경청해 가면서 고민을 계속하겠다"며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날 "당이 알아서 하겠다고 침묵을 요청해놓고, 당이 무력해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지도부의 분위기가 사퇴론으로 기울었음을 내비쳤다. 특히 10일에는 이 총리의 내기골프 의혹이 제기됐고, 당내에서 이 총리의 사퇴불가피론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이 총리를 비롯해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 여권수뇌부를 만나 이 총리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상의 `당론'을 전달했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 주말에 상임위별로 취합한 소속 의원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사퇴불가피론이 상당히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를 만난 이 총리는 주말에 일부 우리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의 바닥민심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언급을 되도록 자제해왔던 정 의장이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5.31 지방선거로 가는 길에서 지금이 최대 위기"라며 새삼스럽게 `위기론'을 꺼낸 것도 이 총리의 거취 문제가 어느정도 교통정리가 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