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영화 '망종(芒種ㆍ두필름ㆍ슈필름워크숍 공동제작)'이 이달 말 개봉된다. 지난해 10월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며 국내에 소개된 지 5개월 만에 대중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ACID상, 이탈리아 페사로 영화제 대상, 프 랑스 브줄 아시아영화제 대상 등 수많은 상을 거머쥐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이라 관객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망종'은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 여인을 통해 그를 둘러싼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가감 없이 다뤘다. 삼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조선김치를 파는 최순희(류연희 분)는 조선족 여인이다. 가족이라고는 아들 창호(김박)가 전부. 노점상 허가를 받지 못해 항상 불안한 그지만 창호에게 "조선족은 조선말을 배워야 돼"라며 한글을 가르친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최순희에게 어느날 조선족 남자 김씨(주광현)가 접근한다. 항상 중국말을 사용하는 최순희에게 유부남인 김씨는 "조선족이 아니냐"면서 접근하고 최순희는 그와 은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던 중 김씨의 부인이 둘이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하자 김씨는 "돈을 주고 잔 것뿐"이라며 서둘러 둘러대고, 최순희는 매춘부로 몰려 경찰에 연행된다. 저항 한번 못하고 순순히 경찰서로 끌려간 최순희는 평소 자신의 단골손님인 왕경찰(왕동휘)을 만난다. 그 동안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던 그는 밤이 되자 혼자 무방비상태로 감금돼 있는 최순희를 찾아와 겁탈한다. '망종'은 최순희를 통해 민족차별과 여성차별을 이야기한다. 최순희에게 식당에 김치를 대주도록 해주겠다며 몸을 요구하는 옆집 중국인 남자나, 중국인 애인에게는 쩔쩔매면서 최순희를 하찮은 욕정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왕경찰의 행동이 그렇다. 소수민족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최순희는 내연남 김씨에게 버림받는 과정에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경찰서로 끌러가고, 이후 왕경찰에게 겁탈당할 때에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한다. 영화 제목인 망종은 보리를 수확하고 볏모를 내는 가장 바쁜 시기지만 씨를 뿌린 점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절기다. 그렇지만 영화 속 최순희는 망종 때만큼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살지만 처음에 품었던 희망은 차별과 폭력으로 점차 절망으로 변해간다. 왕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집에 돌아온 최순희가 창호에게 "더 이상 조선말을 배울 필요가 없다"면서 노트를 찢는 장면은 이제 그가 모든 희망을 버렸음을 암시한다. 영화에서는 성적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몸을 보여주는 쪽은 여성인 최순희가 아닌 남성인 김씨다. 장 감독은 권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는 남성의 보잘 것 없는 나체를 보여줌으로써 남성도 별볼 일 없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망종'의 미덕은 절제된 대사와 여백의 화면,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 방식이다. 장 감독은 여기에 베이징을 암시하는 회색과 변화를 상징하는 푸른색 등 다양한 상징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현역 무용가(류연희)와 분장사(주광현) 등 비전문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