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해마다 1∼2월이면 여행가방을 꾸린다. 미국과 유럽 현지의 투자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포스코의 경영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대기업 회장들 가운데 이 회장만큼 열성적으로 해외 주주를 챙기는 이도 드물다. 그런 이 회장이 요즘 잠을 설칠 정도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을 당할지 않을까 걱정되어서다. 적대적 M&A 위기에 처한 KT&G처럼 포스코도 소유 분산이 이상적(?)으로 돼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율은 67%에 달한다. 이 회장의 고민을 이해하는 업계와 학계도 KT&G에 이어 포스코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이 적대적 M&A를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적인 방어장치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공자님 말씀'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시장에서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면박하고 있다.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장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니 해외 주주들에게 책잡힐 경영이나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지난 8일 "기간산업이라고 하더라도 투명경영과 수익경영을 통해 경영권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며 "정부 지원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 이 회장의 걱정은 괜한 호들갑인가. 역설적이게도 포스코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의 전형이다. 지난해 4조원의 순이익을 올려 올해 총 배당금 중 74.2%인 4700억원을 외국인 주주들에게 주기로 했다. 하지만 외국인의 배당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해외 기업사냥꾼들은 KT&G 사례처럼 언제든지 합세해 경영간섭이나 M&A를 시도할 수 있다. 또 포스코에는 인도 철강기업인 미탈스틸이 유럽의 대표적 철강기업인 아르셀로를 M&A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아르셀로는 룩셈부르크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미탈스틸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미 세계 철강시장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정글속이다. 글로벌 스탠더드 중독증에 빠진 듯한 정부는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할 뿐이다. 김홍열 산업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