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싱가포르의 2개 공과대학을 인정해 주는 대신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의 20개 공과대학을 인정하겠다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우리나라가 더 많이 인정받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 전체 공과대학을 인정하는 셈이 되지만 싱가포르는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15% 정도만 인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의 얘기다. FTA는 상품이나 서비스 시장의 개방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력의 자유로운 교류도 수반한다. 특히 전문인력들의 이동성이 눈에 띄게 높아질 것이고 공학교육을 받은 엔지니어(기술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전문인력의 자격을 양국이 어떻게 상호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어느 국가에서는 단순히 공과대학 학부 졸업이 아니라,예컨대 공학교육과 관련해 특정한 인증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들만이 엔지니어 자격을 얻는다고 해보자.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와 FTA를 한다면 당연히 제기될 이슈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우리나라 20개 공과대학의 졸업자만 인정하겠다는 것이지만 공학교육 인증이 보편화된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우리 공과대학들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기분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공학교육 인증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들에게는 입사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하자 국내 공과대학들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삼성전자 취업을 당장 걱정하는 눈치이지만 더 크게 보면 글로벌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공대교육에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 공대 학부교육이 실질적으로 동등함(substantial equivalency)을 인정해 주는 다자간 인증협약인 워싱턴 어코드(Washington Accord)는 그런 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공학교육 인증제도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검정능력을 키우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지만 어쨌든 정부도 제대로 못한 일을 기업이 해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만약 기업이 특정대학을 우대한다고 했으면 지금의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는 난리가 났겠지만 학교에 상관없이 수요자 니즈를 반영하고 품질을 보증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을 기업이 우대하겠다는 데에는 누가 뭐라고 따질 여지도 없다. 공과대학들로서는 '시장의 힘'을 절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를 연구했던 로젠버그(Rosenberg)는 그 첫째 가는 특징으로 미 대학의 경제적 민감성(economic responsiveness)을 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따지고 보면 인증은 최소한의 조건 충족에 불과하다. 인증이 확산되면 시장은 질적 수준 경쟁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다. 대학은 차별화ㆍ특성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학별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고 기업의 대우도 달라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때는 기업이 특정대학을 우대한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기업에 대해 협상력 우위를 보이는 대학도 나올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