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각종 정보매체로 인해 의학정보를 다방면으로 접할 수 있어 환자들 중에는 의사 못지않게 의학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의사와 환자가 의학지식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한계가 있다. 필자의 전공분야에서 전형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려고 한다. 필자는 지난해 B형 간염에 관한 의학 관련 TV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우리나라 20대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B형 간염 발생빈도가 격감했다. 이는 1990년대 초부터 출산 즉시 아기에게 B형 간염 백신접종을 시행해 면역이 생긴 덕분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인데도 담당 제작진은 이것을 다시 객관적으로 증명을 하고 싶어 했다. 이들은 진단검사 전문의사의 협조를 받아 서울 근교 일부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혈액에서 B형 간염항체를 조사했다. 필자는 담당 제작진의 치밀함과 열정에 크게 놀랐다. 그렇지만 이들 학생 대부분이 면역을 가지고 있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항체가 있는 학생은 50%에 불과했다. 50%는 항체가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에 관한 자문을 받지 않아 이 프로를 방영할 때까지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TV에 방영되는 내용을 보니까 진단검사 전문의사가 출연해 항체가 없는 학생들에게 재접종을 권하는 식으로 무난하게 지나갔다. 상식적으로도 항체가 없으면 재접종을 권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적절한 결론은 항체가 없어도 재접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생아 시기의 간염 예방 접종은 거의 모두 접종 후에 항체가 생성된다는 것이 세계 각국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항체가 없는 학생들은 일단 생겼던 항체가 자라면서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경우 추가 접종을 했을 때와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의 결과는 어떨까. 항체가 소실되더라도 면역은 계속되어 간염예방에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추가 접종은 불필요하며 항체 보유 여부를 검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물론 추가 접종을 한다고 해가 될 것은 없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 막대한 검사 비용과 백신 접종 비용을 낭비하는 꼴이다. 나아가서는 일반인들에게 백신 효능에 관한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간염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려면 여러 가지 면역 현상과 건강 상태 등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항체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곧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생체의 다양한 현상을 생각하지 않은 섣부른 판단이다. 현재의 의학 지식은 가장 완벽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매체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건강 관련 지식들은 일반상식만으로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