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노동계와 정치권이 좀 더 대화할 수 있도록 그 처리를 차기 임시국회로 미룬다는 데 합의했다." 지난달 2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야4당 원내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담을 가진 후 이 같은 합의사항이 나왔다. 그 다음날,한나라당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공보부대표는 양당 정책협의회 후 공동 브리핑을 갖고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을 해당 상임위에 맡겨 조속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책협의회 결과를 존중한 탓일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7일 예정에 없던 환경노동위 전체회의를 열어 민주노동당의 격렬한 반대를 뿌리치고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2월 처리를 다짐했던 한나라당 소속 이경재 환노위원장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했다. 2월 국회 마지막날인 2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인 셈이다.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이 '최연희 의원 성추행'을 희석시키려고 법안 처리에 합의해 줬다"며 강력 비판했다. 하지만 곧 상황은 급반전됐다. 민주노동당의 회의장 점거로 비정규직 법안의 법사위 상정조차 어렵게 되자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2일 본회의를 미뤄가며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를 만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비정규직 법안을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거절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다른 야3당과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차기 임시국회로 연기하자는데 합의했다. 한나라당은 이번엔 환노위 처리 때 '적'이었던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은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열린우리당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다른 민생법안 수십건의 처리가 시간에 쫓겨 무더기로 다음 회기로 연기되는 '볼썽사나운'일도 발생했다. 이렇게 비정규직법안 처리 과정에서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여 혼란의 빌미를 제공한 한나라당은 여당의 '무원칙당'이란 비난에 별로 할말은 없을 것 같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