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주 로또복권을 산다. 일요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주택복권 추첨 방송을 보며 자란 그다. 복권은 2대째 이어지는 희망이다. '돈 걱정 않고 살겠다'는 희망은 그러나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복권과의 확률싸움은 언제나 지는 게임이다. 엊그제 공직자 재산 공개를 보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도 '날으는 양탄자' 같은 것이 떠나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부자였건,아니면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됐건 양탄자 위에 탄 사람들은 달랐다. 기본이 백만장자(백만달러,약 10억원)이고 천만장자도 수두룩했다. 10채나 되는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장만했을까.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재산이 자동으로 늘어나고,내리면 싼 가격에 더 살 수 있는 여력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다짐을 했다. 부는 존중 받아야 한다. 한편 다른 다짐도 했으니 양탄자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을 이제 더 이상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르지는 않기로 했다. 아내에게 이런 다짐을 자랑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영화'친절한 금자씨'의 목소리를 빌리면 "너나 잘하세요"였다. 참 묘한 풍경이다. 국민 앞에 투명하게 금고문을 열어보여 더 잘해보겠다고 만든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인데 나올 때마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만 간다. 천만장자가 심각하게 얘기하는 '양극화'문제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다가올 것이며,강남 부동산 갑부가 제시하는 부동산해법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우리의 소시민들은 그러나 이런 게임이 그나마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걸 인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사실도 몰랐잖은가. 앞으로 공직자들이 '별 수 없이' 염치를 차려가면서 양탄자도 결국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얘기가 아니다. 그보단 양탄자 위에서 만드는 '큰 얘기'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당신이 부자가 아닌 것이 양극화 때문이 아니며, 당신이 취업하지 못한 것이 취업난 때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 화살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먼저 돌려야 한다. 양탄자를 끌어내리려는 허망한 노력보다는 스스로 양탄자 위가 부럽지 않을 인생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해야 옳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부자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시절이 돼가고 있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자칫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은 50 초반에 은퇴해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 벌이도 못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이미 지난 2003년 기준으로 54세에 은퇴하고 77세에 사망하게 돼 있으니 이제 50세 이후 30년 버티기조차 힘든 시대가 됐다. 20대에 일하기 시작한다고 치면 50년짜리 '경제수명'은 만들어야 이 험난한 세월을 헤쳐갈 수 있다. 회사에서 일로 승부 걸고,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하고, 눈높이를 낮춰가는 것이 경제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 자기가 먹고 살 수 있어야 가족이 살아남고 일가(一家)를 이루겠다는 꿈에도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배반감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건 좋지만 벌써 3월이다. '그들만의 리그' 때문에 당신이 흔들릴 일이 아니다. 영 개운찮으면 당신도 금자씨 흉내 한번 내보면 된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