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농협중앙회에 지배 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함에 따라 자산 289조원,임직원 6만8000명의 농협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경부는 농협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진 데다 사업 영역이 많아 부문별 사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지배구조 및 사업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농협중앙회와 단위농협이 제각각 금융 사업을 벌이면서 이해상충 문제가 빚어지는 만큼 농협중앙회 금융사업 부문의 엄격한 분리 및 감독 강화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농협의 생각은 재경부와는 다르다. 농민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려면 현재의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내심 350만명 농민과 정치권의 지원을 바탕으로 재경부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다는 계산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 지금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신용 사업을 확대해 종합 금융그룹으로서 위상을 높여 가는 쪽으로 장기발전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잡한 사업구조 농협은 크게 단위농협과 중앙회 조직으로 나뉜다. 단위농협은 농·축산 관련 공동 사업과 조합원 대상 예·적금,대출 등 상호금융 업무를 하고 있다. 단위농협의 연합회 성격인 중앙회는 이보다 훨씬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본업인 교육지원 사업(농업인 및 교육)과 농업 및 축산 관련 경제사업(농·축산 관련 구매 가공 판매 등)뿐 아니라 은행 공제(보험) 카드 증권(세종증권) 투신(농협CA투신) 등 다양한 금융 업무를 취급하고 있다. 회계도 관리 신용 교육지원 축산경제 농업경제 등 5개의 일반 회계와 은행 신탁 공제 카드 상호금융 농작물보험 등 6개의 특별 회계로 나눠 처리한다. ◆'현 체제 사업불투명성 크다' 재경부의 요구는 한마디로 여러 사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교육지원 사업을 지주회사의 모기업으로 설립하고 다른 사업은 각각 별도 주식회사로 만들어 모기업 밑에 두라는 주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주회사 요구의 골자는 중앙회 은행 부문의 독립회사 설립"이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단위농협의 연합회이자 사무 조직인 중앙회가 사업 부문으로 은행업을 하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재경부는 △중앙회의 은행업이 단위농협의 상호금융 업무와 겹치다 보니 이해 상충이 발생하고 △현재처럼 계속 사업부 형태로 존속해 임직원의 순환근무가 이어지면 전문성이 떨어지며 △은행 공제 카드 증권 등에 방화벽(firewall)이 쳐지지 않으면 한 쪽의 부실이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시스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경부가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책임경영 체제가 구축되고 금융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중앙회가 부실 단위농협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게 돼 단위농협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협 '사업 분리 반대' 현재 농협법은 농협중앙회가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의 분리 방안을 오는 6월 말까지 농림부에 제출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이를 위해 안진회계법인에 관련 용역을 맡긴 상태다. 농협이 농림부에 분리 방안을 제출하면 농림부가 전문가 등의 의견을 구해 최종 확정하게 된다. 이 같은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재경부가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검토해 줄 것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농협은 재경부의 지주회사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인 데다 신·경 분리 자체에 부정적이어서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 차원에서 농협 개편안을 마련해도 국회 등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또 다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