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선 < 현대해상화재보험 사장·jason@hi.co.kr > 요즘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을 보면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의 광화문 사옥 역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옥상정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옥상정원은 직장인들이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직장생활로 쌓인 심신의 피곤을 달랠 수 있는 녹지공간 역할뿐 아니라 시들어 가는 도시 생태계를 살리고 도심의 열섬 현상을 완화시켜 주기까지 해서 행정당국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좋은 음악을 듣거나,자연 속을 거닐면서,식구들과 밥상을 마주하면서 오아시스를 찾는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회사가 오아시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는 옥상정원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영업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갖춘 진정한 의미의 오아시스가 되어야 한다. 옥상정원이 주는 일시적 피로회복보다,회사에 가면 애쓴 노고를 위로 받고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영업전선에 나설 수 있다는 데서 얻는 정신적 평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라고 하면,몇 해 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 신인 연기상을 받은 '오아시스'란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전과3범의 사회 부적응자인'홍종두'와 뇌성마비 장애자인'한공주' 사이의 사랑을 통해서 삶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동안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외면당한 이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치유 받으며 정신적인 평온을 얻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전개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2개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치유와 위로를 주는 오아시스이고,이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이를 인정해주는 관객들의 마음이 또 하나의 오아시스다. 우리는 자신이 쉬어갈 오아시스를 찾는 데 급급해서,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오아시스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지친 사람들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영화 오아시스의 주인공처럼 상대방에게 안식을 주는 큰 오아시스가 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주인공들의 사랑을 인정해준 관객처럼 우리 주위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작은 오아시스가 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획일적인 잣대에 따라 심판하지 않고,포용과 관용의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하여 이해해주고 인정해 줄 때 우리 사회가 큰 오아시스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