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이바라기현 모리야시에 위치한 마에카와 제작소.아침 7시면 어김없이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청년 같은 노인이 있다. 도쿠나가 노부오씨(69).그는 마에카와가 생산하는 각종 산업용 기계의 부품을 찍어내는 주형(거푸집)을 제작하는 쇼쿠닌이다. 도쿠나가씨는 사이타마현에서 주형을 30년간 만들다가 마에카와 제작소가 어려움을 겪던 1988년 스카우트됐다. 멕시코 공장까지 나가 주형을 제작하고 기술자를 양성했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산업용 냉동 컴프레서의 부품은 그의 주형을 거쳐 만들어진다. 직원들은 그를 두고 '오야카(일종의 보스)'라 부른다. 그런 그가 4년 전,남들은 퇴직하고도 한참이 흘렀을 나이에 새로운 '발명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주형 재료인 모래를 굳게 하려면 경화제(硬化劑) 등 화학물질을 써야 했다. 도쿠나가씨는 화학물질 대신 물을 넣은 뒤 영하 40도에서 동결시키는 신공법을 개발했다. 도쿠나가씨는 "얼음이 녹으면서 주형이 자연붕괴되기 때문에 공장 내 먼지나 소음이 크게 감소한다"고 자랑했다. 또 쇳물 100kg을 넣으면 기존 방식으론 약 35~40kg의 원료가 손실됐는 데 반해 신공법으론 10~20kg 정도 원료 손실이 줄어든다. 마에카와는 도쿠나가와 같은 장인의 땀에 힘입어 전 세계 18개국 27개 지역에 진출한 세계적인 플랜트 엔지니어링 회사로 우뚝 섰다. 최고령 직원이 94세일 정도로 이 회사는 쇼쿠닌을 최고 경쟁력으로 여긴다. 히타치제작소의 '고시(工師)',미쓰비시중공업의 '항시(範師)',미츠토요의 '시쇼(師匠)'처럼 많은 기업들이 나름대로 쇼쿠닌 양성 제도를 도입,이들에게 기업의 미래를 걸고 있다. 일본식 패스트푸드(덮밥전문점)의 대표주자 '요시노야'는 2004년 2월 미국 광우병 파동으로 규돈부리(쇠고기덮밥) 판매를 중단해야 했을 때 타격이 너무 컸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팔지 않는 격"이라고 가토 다다오 유라쿠초점장(33)은 비유했다. 대신 정식류 등 다른 요리로 손님을 끌어야 했다. 문제는 조리시간.규돈부리는 20~30초면 제공할 수 있었는데 정식류 등은 보통 3~8분 걸렸다. 가토 점장은 주방용품 등 비품의 위치를 몇번이고 바꿨다. 손님이 오는 시간대와 고객수,어떤 음식을 주문하는지 꼼꼼히 분석했다. 어느 정도 예상된 메뉴를 온장고인 후드캐빈에 잠깐 보관했다가 다시 데워 내놓았다. 스톱워치를 사용해 100m 달리기 기록을 재듯이 시간을 줄여갔다. 이제 평균 1분이면 음식을 서비스할 수 있게 됐다. 고객수도 규돈부리 판매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가토 점장은 "나는 회사원이지만 음식을 조리,서비스하는 기술에선 쇼쿠닌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들만이 아니다. 미쓰코시 백화점 2층 '마이스타일 365'에서 일하는 숍마스터(매장판매책임자) 가라사키 히로미씨(37)도 쇼쿠닌 정신으로 무장한 샐러리맨이다. 그는 고객의 가족관계나 주로 방문하는 시간 등 남들이 놓칠 수 있는 작은 정보까기 섬세하게 관리해 '1급 판매우수사원'으로 꼽혔다. 이처럼 최근엔 일반 샐러리맨들까지 쇼쿠닌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어 일본 전역이 쇼쿠닌으로 충만돼 있다. 도쿄=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