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기도 시흥시 디엔씨존 금형공장.한창 금형 조립작업을 하던 박양호 부장(43)이 '설계도면이 변경됐습니다'는 휴대폰 단문문자메시지(SMS)를 받고서는 작업장 한켠의 컴퓨터로 달려간다.


제조업을 정보기술(IT)과 접목시킨 e매뉴팩처링의 사이트에 들어간 박 부장은 국내 한 LCD 업체가 주문한 TV스피커 후면부의 설계도면을 3차원 입체영상으로 돌려가며 꼼꼼히 살펴보고 변경내용을 확인한다.


금형 경력 20년째인 박 부장은 "예전에는 설계가 바뀔 때마다 일일이 도면을 들고 와서 작업장에 펼쳐놓고 보느라 번거로움이 많았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다"며 "e매뉴팩처링을 도입한 후 예전에 비해 작업효율이 30% 이상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e매뉴팩처링은 원청 설계에서부터 중간 설계변경 내용,현재 작업 현황 등을 작업장에서 휴대폰 단문 문자메시지(SMS)와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기업들의 생산현장 모습이 바뀌고 있다.



제조 혁신을 위해 IT기술을 생산공정에 적극 도입하면서 컴퓨터가 생산현장의 필수 장비로 등장했다.


중소업체들이 휴대폰과 인터넷 등을 이용해 초기 단계의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서나 정보 접근) 사업장을 구현하는 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의 제조혁신은 전자태그(RFID) 등의 유비쿼터스 기술도입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RFID는 단순히 제품의 기본정보만을 입력할 수 있는 바코드와 달리,해당 제품이 부품단계에서부터 국내외로 판매된 이후까지 추적할 수 있는 전자태그 기술로 향후 물류 및 생산공정에 대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삼성전자 전남 광주 가전공장의 경우 한때 '삼성전자 내 미운 오리새끼'로까지 불릴 정도로 한계사업장으로 분류됐었다.


지금은 회사 내 반도체 직원들까지 견학을 다녀갈 정도의 모범 사업장으로 탈바꿈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난해부터 해외수출 청소기에 RFID를 전격 도입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광주 청소기 공장은 RFID기술의 전 사업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LG전자도 경북 구미 PDP라인에 시범 RFID를 적용하고 있다.


PDP패널을 운반하는 팔레트에 RFID를 설치,불량 패널 발생 시 이를 역추적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LG전자는 RFID기술을 공급체인 부분까지 적용을 확대하는 등 생산 공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유비쿼터스를 활용한 제조혁신은 중국의 추격과 고환율이라는 이중고를 맞고 있는 국내제조업체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가격경쟁력만을 내세우던 중국업체마저 품질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일본은 물론 국내 기업까지 중국으로 주문을 돌리면서 제조혁신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중소 금형업체인 디엔씨존의 이창호 사장은 "과거와 같은 생산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중소 금형가공업체들에 확산되면서 각 금형분야의 전문업체들이 e매뉴팩처링을 통해 손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디엔씨존은 2003년 주요 고객사인 일본의 도시바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연락을 받았다.


청소기 풀세트 등의 금형을 주문해오던 도시바가 갑작스레 거래중단을 통보해온 것.도시바는 가공비가 비싼 한국업체 대신 품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인건비가 싼 중국의 신흥 금형업체를 새로운 거래선으로 돌렸다.


비상이 걸린 디엔씨존은 2004년 JS테크 태주 에이스 인정와이어 등 9개 중소 금형업체들과 손잡고 '몰드존'을 만들었다.


몰드존은 철저한 분업구조를 띤 중소 금형업체들의 새로운 실험이다.


디엔씨존은 수주영업,JS테크는 범용가공,태주는 자동차설비,에이스는 조립을 맡는 형태다.


금형 주문에서 생산에 이르는 과정도 획기적으로 바꿨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와 머리를 맞댄 끝에 당시 중소업체가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하던 e매뉴팩처링을 과감히 도입했다.


이창호 사장은 "처음 9개 업체들이 손잡은 후 협력업체별로 서로 다른 품질관리,납기일 등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준 게 바로 e매뉴팩처링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