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의 과장급 이상 전 임직원이 22일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 대강당에 모여 '위기극복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자발적인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환율 급락과 고유가,원자재가격 급등에다 선·후발업체의 견제와 추격까지 거세져 사면초가의 위기에 내몰리자 임직원들이 스스로 '비상카드'를 꺼내든 것.현대모비스와 현대INI스틸 등 다른 계열사도 임금동결에 동참할 예정이어서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초긴축 경영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이에 대해 박유기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노사 간 협의나 사전 정보 없이 회사측이 관리자들을 동원해 임금동결을 결의했다"며 반발했다.


◆임금 동결 선언의 배경은


현대·기아차가 외환위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동결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환율 하락 및 유가·원자재값 급등으로 인한 '3중고'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격화 때문이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현대차는 지금 위기를 뚫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느냐,몰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절박한 심정을 내비쳤다.


실제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환율 급변은 '아킬레스건'이다.


해외 판매가 전체 매출의 76%에 달하고 부품 국산화율이 97%를 웃돌기 때문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평균 950원으로 지난해(1034원)보다 84원 하락한다고 예상할 경우 현대·기아차의 수출액은 2조5000억원이나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 자체 계산이다.


최근의 원화 강세는 예년과 달리 엔화 약세와 동시에 진행돼 일본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해외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가격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GM과 포드 등은 대당 3000~4000달러씩 깎아주는 파격적인 할인판매에 나서고 있고,도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들도 현대차를 겨냥해 1만~1만2000달러대의 값싼 중소형차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머지 않아 해외시장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할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전도 넘어야 할 난관이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현대차가 임금 동결을 선언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갈수록 허약해지는 국내 생산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시각이 그것.현대차 국내 생산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003년 9.0%에서 2004년 7.2%,지난해에는 5.1%로 떨어졌다.


2003년 2조2357억원이었던 영업이익도 지난해 1조3841억원으로 불과 2년 만에 61.5%나 급감했다.


지분평가이익 등 해외공장과 계열사의 이익이 반영돼 순이익은 늘었지만 본업인 국내 생산부문의 생산과 판매로 거둬들이는 영업이익은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현대차의 이번 임금 동결은 10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면서도 최근 4년 연속 임금동결을 선언한 도요타의 사례도 참고했다는 후문이다.


김동진 부회장은 "미국의 GM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무엇보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단기적인 이익에만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원가절감,철저한 품질관리,협력적인 노사관계 등에 힘입어 지속 성장하고 있는 도요타는 우리의 귀감"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