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비료 15만t의 대북 지원을 28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북측에 통보한 것을 놓고 타이밍이 묘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날 통보는 지난 1일 전통문에서 북측이 희망했던 지원 시기인 `2월말'에 맞춰 이뤄졌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정부는 그 전부터 비료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라는 입장을 흘려왔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인도적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북측이 요청한 시기인 2월 말에 맞추기 위해서는 수송계획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지원 결정이 이날 통보된 점이 눈길을 끄는 것은 시기적인 측면과 관행상 절차 때문이다. 먼저 시기적으로 보면 북측이 제3차 장성급군사회담을 3월 2∼3일 갖자고 지난 20일 통보해 온 지 이틀 만에 이뤄졌고 21일 시작된 제7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통보된 것이다. 이 두 회담은 남북관계가 전진할 수 있는 지 여부가 걸린 중대 이벤트다. 적십자회담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해결에, 장성급회담은 서해 공동어로수역 의 설정을 포함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각각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관행에 비춰 보면 절차상에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비료 지원에 앞서 남북이 만나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전통문으로 요청하고 답신하는 일종의 문서교환 만으로 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가 중단된 상황이던 작년의 경우 1월에 북측의 요청이 있었는데도 우리측은 회담을 열어 협의 절차를 거치는 게 관행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지원결정을 미루다가 5월 중순 차관급회담에서 합의한 뒤에야 지원했다. 이 때문에 작년에 정부가 내세운 논리가 무색해졌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회담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난해의 경우 5월 차관급 회담 이전까지 당국간 대화가 동결된 상태였지만 올해는 대화의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서 결정'의 한 배경이 됐을 수 있다. 이 같은 전후 사정과 흐름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지원결정의 시기와 절차는 다양한 효과를 감안해 정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분석은 비료가 북측 농경지에 뿌려져 수확량을 늘리는 표면적인 효과 외에 남북관계 진전에 밑거름이 되면서 북측의 전향적인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갖고 있다는 시각에서 나온다. 명시적으로 대가를 원하지 않지만 내심 북측의 반응을 노리며 북측도 그냥 받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이 `약발'을 기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이날 발언은 눈에 띈다. 이 장관은 KBS1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비료를 납북자 문제 등과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 인도적 차원의 지원임을 전제한 뒤 "이산가족상봉이나 장성급회담, 긴장완화, 납북자 문제 등 남북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이지만 남북관계 전반에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기대를 담고 있는 셈이다. 회담을 통한 협의 없이 조기에 지원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적십자회담이나 장성급회담을 염두에 두고 분위기 조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 조치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적십자회담과 장성급회담이 다루는 의제가 당장 합의에 이르기에는 쉽지않은 난제들이라는 점에서 비료가 약효를 발휘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