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2월 초의 뉴질랜드와 호주 여행은 처음으로 나에게 오염되지 않은 대륙을 구경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특히 3박4일 동안 각자 자기의 먹을 것과 침낭까지 모두 등에 지고 원시림 60km를 걸어가는 강행군은 스스로도 신기하기 그지없는 트레킹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게 밀포드 트레킹 못지 않게 놀라웠던 것은 대양주에서도 퍼즐 '스도쿠'가 신문에 실리고, 특히 그 문제를 수십만개 내장시킨 전자게임기 판매 광고를 신문에서 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지난해부터 신문 잡지에 등장한 오락 '스도쿠'는 일본어 '수독'(數獨)에서 유래한다. 가로 9간 세로 9간의 81개 자리에 1부터 9 까지의 숫자만을 넣어 빈칸을 채우는 퍼즐 게임인데 각 줄,각 칸에는 1부터 9 까지의 숫자가 한번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숫자가 한번만 사용될 수 있다는 규정에서 "숫자가 홀로"라는 말로 '수독'이란 이름이 태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세분한 9개의 9칸짜리 네모 각각에도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한번씩 밖에 쓸 수 없다. 말하자면 가로 세로 각각 3칸짜리 3개씩을 포개놓은 꼴인데,이 가운데 일부 숫자만 알려주고는 나머지 숫자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 게임이다. 문제는 내기에 따라 아주 쉽게도 낼 수 있지만,아주 어려운 문제도 만들 수 있다. 이 퍼즐은 원래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수학적 퍼즐로 변신해 등장한 것은 미국의 퍼즐잡지 '델'이 1979년에 시작하면서부터다. 하워드 간스란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 퍼즐을 일본의 월간잡지 '니콜리스트'가 1984년 4월호에 소개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후 출판사 사장인 가지 마키(假治眞起)가 '스도쿠'란 이름을 지어냈다고 전한다. 원래 미국에서는 '넘버 플레이스(Number Place)'란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스도쿠란 일본식 용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주목한 인물이 뉴질랜드 법조인 웨인 굴드였다. 그는 6년 동안 연구한 끝에 손쉽게 스도쿠 문제를 만들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만든 '파포컴'이란 회사는 그후 10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고,그의 노력으로 런던의 '더 타임즈'가 2004년 11월12일부터 매일 스도쿠 퍼즐을 신문에 싣게 되자 그 인기는 단연 높아가게 됐다. 영국에서는 그 후 신문 잡지는 물론 TV생방송까지 될 지경이었다. 이 퍼즐은 작년 한 해 동안 세계를 휩쓸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아사히 등 주요 신문이 이를 싣고 있음은 물론,한달에 60만권 이상의 게임 책자와 해설서가 팔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주요 신문들이 이 게임을 싣고 있고,내가 처음 방문한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신문에 게재된 스도쿠를 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듯하다. 오는 3월10일부터 12일까지 이탈리아의 루카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열린다. 이미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 게임이 다른 빈칸채우기 낱말놀이보다 월등한 지적 자극제가 되어 치매 예방에도 크게 도움 된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기도 하다. 정말로 그런 것일지는 두고볼 일이지만,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게임이고 보면 과학의 생활화와도 무관하지 않을 성 싶다. 그 역사를 말하면서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는 말하지만,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수학적 관심을 보여준 정승(政丞) 수학자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란 이가 있다. 그는 병자호란 때의 주화파로 유명한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손자인데,그가 남긴 수학책 '구수략(九數略)'에는 숫자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신기한 조합이 그림으로 여럿 남아 있다. 동양사상의 원천인 하도낙서(河圖洛書)가 바로 1에서 9까지의 숫자를 한번씩만 써서 만든 9칸 짜리 사각형이니,이 또한 오늘날 스도쿠의 원조랄 수도 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