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한 자본시장통합법안에 따라 증권업계는 그간 다루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됐다. 열거주의에 묶여 선보이지 못했던 날씨 연계 장외파생상품과 같은 다양한 상품 개발이 가능해지고 타금융권 업무도 병행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지금까지 위탁매매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형 투자은행으로 변신을 꾀하고 나설 조짐이다. ◆어떤 상품 가능한가 =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이 금융상품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증권의 범위가 확대되고 파생상품 기초자산이 무제한 늘어난다는 점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법개념이 기존 '포지티브'(법에 열거된 항목만 인정)에서 '네거티브'(법상 금지 항목을 제외한 모든 항목 인정)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는 주식.채권.수익증권.선물.옵션 등 법에 열거된 유가증권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상품들만 다룰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구조의 여러 상품들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주식, 채권, 금리, 농축산물, 금속, 원유 등 기존 틀에서 벗어나 무제한으로 확대될 수 있다. 예컨대 주가연계증권(ELS)의 경우 주가지수나 이자율 등에만 연계된 상품들만 가능했지만 앞으로 기업의 부도 위험 등 각종 신용과 연계된 상품이나 날씨와 연계된 기후선물은 물론 인플레이션.실업 등과 연계된 상품 개발도 가능해진다. 또 외국에서는 잘 알려진 화재나 지진 등의 재난과 관련된 '재난채권'도 등장할 수 있으며, 과도한 부채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이 향후 전액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강제전환증권'을 발행하는 것도 허용된다. 아울러 전세권이나 상속권을 유가증권화해 유통시켜 자금을 조달하는 상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속 전이라도 상속법상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뒤 실제 상속을 받아 자금을 갚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전세권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전세권의 경우 국내시장에 진출한 미국 GE캐피털이 전세권 담보대출을 시행하는 등 이미 유가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일부 발휘하고 있다. 또 펀드상품(수익증권)도 다양해진다. 분양권 취득과 관련된 부동산펀드나 중도환매 부동산펀드의 등장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투자대상과 기간을 무제한 변경할 수 있는 혼합자산펀드도 가능하다. 예컨대 주식에 100%를 투자했다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부동산으로 투자 대상을 돌릴 수 있는 상품도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주범 우리투자증권 상품개발팀장은 "지금까지는 ELS 등 파생결합상품도 주가지수와의 연계 등 한정된 범위내에서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기업 신용 등과도 연계해 발행할 수 있게 된다"며 "심지어 부도 위험이 있는 기업의 채권 발행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희주 대우증권 상품개발마케팅부 팀장은 "다양한 기초자산을 실제로 파생상품화하려면 일정한 수요자와 공급자, 그리고 가격과 연동된 데이터 등 최소한 3가지 요건이 구비돼야 한다"면서 "기후선물 도입을 위해서도 상품거래가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기후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야 하는 등 제반 환경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종합선물세트식 업무 가능 =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에 따른 증권업계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증권종합계좌(CMA, Cash Management Account)의 등장이다. CMA는 지금도 도입이 가능하지만 은행과 연계해 계좌를 개설.운영해야 하기 떄문에 제약이 많고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이 도입되면 증권사가 독자적으로 은행 및 증권계좌 기능이 통합된 CMA를 설계해 운영할 수 있다. CMA의 특징은 계좌내 유휴 현금을 MMF(머니마켓펀드) 등 단기투자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신용카드 대금과 공과금 등 각종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 은행 이자율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도 월급을 증권계좌로 받아 공과금 이체까지 가능해 이용 고객 입장에선 매우 편리하다. 은행.운용.증권.보험등 다양한 금융업무를 증권사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돼 영역간 업무가 혼합된 다양한 서비스를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은행 결제망을 이용하기 위해선 금융결제원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이 경우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입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증권사가 금융창구로도 활용될 수 있게 됐다"며 "대출, 신탁, 보험, 자산운용 등 타업종 업무에 대한 접근성도 용이해질 것"이라며 말했다. 그는 "증권사에서도 돈을 거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상당한 은행 고객을 증권업계로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이웅 기자 indigo@yna.co.kr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