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딸 같은 저에게 속을 드러내길 꺼리지만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를 바꿔 달라'며 적극적으로 바뀐답니다."


홍보대행사 사람과이미지의 이주연 PI팀장(34)은 국내에서는 아직 그 숫자가 많지 않은 PI컨설턴트다.


PI(최고경영자 이미지 통합·President Identity)는 말 그대로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와 기업의 이미지를 통일시키는 작업.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에 맞게 CEO의 이미지를 교정해 고객들이 그 기업에 호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활동의 일종이다.


"요즘은 너도나도 CI(기업 이미지 통합·Corporate Identity)를 하고 있지만 지난 70년대 이 개념이 국내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많은 기업들이 왜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PI도 마찬가지죠.조만간 기업들이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내에는 90년대 말부터 PI컨설팅을 하는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지금은 2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PI를 제대로 하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그녀는 "PI는 CEO의 마음가짐(mind)과 행동(behavior),외모(visual) 등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며 "국내 PI컨설팅 업체들은 대부분 CEO의 의상이나 메이크업 등 외모를 관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PI컨설턴트가 되기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녀는 적성에 안 맞는 대학교를 중퇴한 뒤 1993년부터 5년간 TV홈쇼핑의 쇼호스트,CF 모델,방송 리포터 등으로 활동했다.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무작정 시작한 방송일이었지만 출연진의 분장과 의상 코디를 직접 해보며 PI의 기본인 외모 가꾸는 기법을 터득했다.


2000년부터는 프랑스 마뵈프대학에서 이미지 연출을 전공하며 컬러 코디(피부색에 맞는 의상 및 화장 등의 코디)와 경영철학,대외커뮤니케이션 등을 배웠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 경제인연합회 회원사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PI 기업에서 1년간 실전 경험을 쌓기도 했다.


지난해 귀국한 후 9월부터 사람과이미지에서 근무 중인 이 팀장이 현재 관리하고 있는 대기업 CEO 고객은 3명.그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이지만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곤란하다"며 "고객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PI컨설팅의 첫 번째 철칙"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을 찾는 고객들은 대개 두 종류다.


자신의 능력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평가받기 위해 컨설팅을 받는 타입과 공개를 꺼리는 사생활 등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에 대해 상담을 받는 타입 등이다.


그녀는 "PI컨설팅은 가공의 인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CEO의 잠재가치를 끌어내 명품화하는 작업"이라며 "아직도 CEO에게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연출시키는 등 구태의연한 처방으로 오히려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사례를 보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요즘 신년 모임 등으로 CEO의 공개적인 자리가 늘어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연설회 세미나 등 모든 공개석상에는 빠짐없이 CEO와 동행하며 의상과 분장을 체크하고 연설문 등을 교정해야 한다.


일주일 중 이런 업무로 불려나가는 게 3∼4차례 정도.CEO와의 정기적인 상담까지 감안하면 주말도 빠듯하다.


아직 미혼인 그녀는 "주위에선 시집 안 가냐고 잔소리지만 올해도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려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