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이후 북핵 국면은 호전되지 않고 있고 북ㆍ미관계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다각적인 차원에서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고 당연히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비난하면서 6자회담 거부를 명백히 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대북 금융제재는 철회가 아니라 한국 일본 등의 동참을 강력 요구하며 더욱 확대되는 형국이다. 위폐와 돈세탁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관련된 북한의 모든 금융 거래를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히기도 한다. 한국이 일부 동참하기로 합의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역시 미국이 끈질기게 대북 압박을 추진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PSI가 북한에 대한 물리적 차단이자 군사적 압박이라면,금융제재는 북한의 돈줄을 차단함으로써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넘어 체제 전환이라는 '북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미국엔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9ㆍ19 공동성명으로 핵문제가 봉합된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은 더욱 전면화되고 있고 따라서 김 위원장의 선택은 북ㆍ미 대결의 장기화를 대비하는 체제유지 전략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즉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나 미국의 태도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 남은 임기인 '3년 버티기'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1994~1996년의 '완충기' 설정 이후 처음으로 금년에 '기간공업 및 농업의 3년 연속계획'이라는 경제계획을 발표한 것 역시 북한의 '3년 버티기' 전략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그리고 3년 버티기가 성공하려면 북한으로서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와 남북관계 유지가 중요한 생존비결이 된다. 사실상 연초의 전격적인 방중도 미국의 대북 압박을 우회하기 위한 언덕으로서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확인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 외에 남측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이익 역시 적지 않음을 북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얼마전 열린 군사실무회담에서 북한이 남북장성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북한이 군사회담에 호응하고 나선 데는 최근 남측이 도로포장용 피치를 제공하는 등 경제적 지원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남북관계를 북ㆍ미 대결의 안전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놓여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북ㆍ미 대결이 구조화되고 북핵상황의 호전을 기대하기 힘든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대미전략 차원에서 남북관계에 호응해온다면 이를 대북 설득의 지렛대로 삼고 한반도 긴장완화로 발전시킴으로써 결국은 북핵상황 돌파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북한에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지속될 것임을 설명하되,미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북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3년 버티기' 전략을 무마시키고 미국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북한의 선행동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의 유용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ㆍ미 간 대결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안전판'의 의미로도 남북관계는 지속발전되어야 하고,북한의 의미 있는 태도변화 및 선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영향력 확보의 차원에서도 남북관계는 보다 진전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으며 북ㆍ미 대결 국면을 남북주도의 '돌파구' 마련으로 우회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상황의 교착과 북ㆍ미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