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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친구의 전화‥손윤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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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윤하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bluerock.go.kr >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평소에 연락을 하는 친구가 아니어서 반가웠다. 친구는 일상적 안부를 묻고는 불쑥 "손 판사,이제 자네는 아주 편하게 되었어"라고 하였다. "왜?"라고 되물었더니,친구는 "이제 배심원들이 피고인을 모두 재판하니,자네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잖아?"라고 하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무심결에 그냥 친구에게 "자네는 형사재판에서 배심제 도입을 찬성하는가?"라고 물었다. 친구는 "물론 찬성하지"라고 대답하였다. "그럼 자네는 범죄를 저지른 일이 없는데,어떤 이유로 형사재판에 기소될 경우 판사로부터 재판 받기를 원하는가,아니면 법률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들로부터 재판 받기를 원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는 판사로부터 재판 받기를 원하는데"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 조금 더 주변 일을 이야기하다 친구의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모순된 대답을 들으니 친구가 배심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래서 친구에게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배심제는 영미법에서 형사재판의 한 형태로 유래되었다. 그 내용은 피고인이 무죄라고 주장하면,무죄 여부가 전적으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의 평결에 의해 결정되고,유죄로 평결되는 때에만 법관이 형을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사재판의 배심제를 도입하는 미국에서 전체형사사건 가운데 배심원의 평결로 재판받는 사건이 10%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데 소요되는 변호사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예로 유명한 부자인 미식축구선수가 자신의 처를 살해하였다는 죄에 관해 배심원들로부터 무죄평결을 받았지만,후에 그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일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무죄라고 생각하거나 일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도 배심원의 평결에 의한 재판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 대신 피고인,법원,검찰과의 거래(소위 '플리바겐'이라고 칭하는데,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를 통하여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고 형을 감형받는다고 한다. 우리도 사법제도개혁의 일환으로 배심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배심제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재판에 대한 신뢰가 제고된다면 당장 이를 도입하여야 한다. 다만 배심제의 연혁과 장단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재판의 불신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과 국민의 인식문제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사람이 붓을 가리지 않는 명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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