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임 논설위원· 세종대 교수 >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는 '복잡계(complexity)이론'에서 쓰이는 특수용어다.영어 edge를 번역한 '가장자리'는 얼핏 들으면 어떤 사물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쯤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복잡계에서 말하는 '혼돈의 가장자리'는 '혼돈이 극에 달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풍전야의) 상태' 또는 '태풍의 눈' 정도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실제 내용과 더 부합되는 표현이다. 초기 소수에 불과했던 '붉은 악마' 200여명이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에 들게 된 절정기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4700만 함성의 돌풍으로 바뀐 현상이나 북경의 몇 마리 되지 않는 나비의 날갯짓이 공명(resonance) 또는 공진(共振)을 일으키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설명 등은 복잡계 이론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난데없이 복잡계 이론을 들추어내는 이유는 요즘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현 상황 자체가 바로 '혼돈의 가장자리'와 흡사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 집권 3년 동안 우리사회는 치유하기 힘든 국론분열 상태에 빠져들었다. 행정수도 건설,과거사 진실규명 등 이미 접혀진 의제는 말할 것도 없고,큰 정부-작은 정부 논쟁,사학법 개정,북한 인권이나 위폐에 대한 의도적 외면,한ㆍ미동맹을 둘러싼 겉과 속이 다른 정치적 수사 등 우리사회를 극과 극으로 분열시킨 대형 이슈들만 꼽으려고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최근 들어 집중 부각되고 있는 양극화라는 단어 또한 노무현정부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성향을 지적하는 여론의 비판적 예봉을 피하기 위한 정치 선전전의 산물이라는 시각 또한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이념적 본질은 그대로 둔 채 단어만 바꿔 '재포장'한 마술수준의 정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어떤 사안이든 각 개인의 의견이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맺고 끊는 게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슈의 이분법적 핵분열' 상태는 국가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혼돈의 가장자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국론분열이 내포하고 있는 위해성에 대한 여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벌이는 '대안없는 이슈화'에 대해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파괴력이 극대화된 '정치적 대폭발'을 염두에 두고 혼돈상태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빅뱅(big bang)'의 결정적 시기를 재집권을 위한 시간표에 맞춰 놓고 그 전에 파괴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도록 이것저것 분열을 야기해 정국을 '카오스(chaos)'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양극화,특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간의 양극구도를 사회적 화두로 내세우고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 자체가 사회를 극과 극으로 묘사해가며 국가 전체를 '혼돈의 가장자리'로 몰아가 지지세력 확보를 극대화하려는 또 다른 정치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소득양극화 해소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둬들여 분배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노선은 아이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고기 잡아주느라 바쁜" 사회적 독이라는 묘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혼돈의 가장자리'를 '긍정적 대폭발'로 유도하기 위해 이제부터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수출-내수,대기업-중소기업,디지털-비(非)디지털,대형병원-소형병원,그리고 이들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념적으로 갈라진 좌우 대립 등 우리사회의 다면적 양극화 현상의 극복을 통한 보다 본질적이고도 생산적인 성장동력 창출에 있다. 사람들은 마술에 쉽게 빠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집중시켜 의외의 결과를 내놓는데 현혹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마술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다. bjyang@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