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장가 가는 게 효도죠." 은행원 김형준씨(31)의 설 연휴 일정은 결혼정보 회사에서 주선해 준 소개팅으로 가득 차 있다. 장손인 그는 몇년전부터 명절이 싫었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가족 친지들의 재촉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다급해진 그는 최근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이번 설 연휴는 구혼 활동에 '올인'하기로 했다.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설 연휴가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미혼 남녀들은 고향행을 미룬 채 연휴 기간을 맞선으로 보낼 계획이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맞벌이 주부들은 설 근무를 핑계로 시댁행을 회피하려고 한다. 미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구직 활동도 설 연휴라고 멈추진 않는다. ◆설 연휴에 맞선 회사원 최경호씨(33)는 지난 16일 "결혼한 사촌들이 쌍쌍이 인사하러 올 것을 생각하면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싹 없어진다"며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최씨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결혼정보회사는 요즘 1년 중 가장 바쁜 때를 보내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가입 문의 건수가 작년 12월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으며 가입자 수도 10% 이상 증가했다. 선우의 가입자 수도 지난주부터 평소의 1.5배 수준으로 폭증하고 있으며 이미 가입한 회원들은 한 명이라도 더 소개해 달라며 커플매니저를 재촉하고 있다. 선우의 정선애 강남센터장은 "명절이 다가오면 본인과 부모님이 돌아가며 하루에 한 번씩 커플매니저에게 전화해 설날에라도 좋으니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정 센터장은 "설이 지나면 결혼에 대한 압박을 한 번 더 받고 난 미혼 남녀들이 대거 몰려 회원 가입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1~2주는 야근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댁보다 직장 선택 설 근무를 자청하는 맞벌이 주부들이 늘어나는 것도 신풍속도다. 시댁에서 차례준비와 설거지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할인점 계산대에서 일하는 주부 이미옥씨(36)는 2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근무를 한다. "점포가 명절엔 더 바빠서…"라며 시댁에 못 간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웬만큼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시댁에서 받을 명절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명절 근무를 하겠다는 주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의 남편 김태형씨(40)는 "1년에 한두 번 있는 명절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시댁을 피하려는 건 너무하지 않으냐"며 씁쓸해 했다. 일부 사무직 여성들의 경우 설날 당직이나 출장 등을 자원해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가기도 한다. ◆이력서 하나라도 더 구직자들에게 명절은 더욱 괴로운 시기다. 명절을 즐길 여유가 없어서다. 고향에 가봤자 찬밥 신세가 뻔하기 때문에 지금 있는 곳에 머물며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진아씨(26)는 요즘 각종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느라 명절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이씨는 "직장을 그만둔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실업자 신세로 명절을 맞이하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며 한숨 지었다. 이씨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채용 시장이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정보 사이트는 붐비고 있다. 스카우트(www.scout.co.kr)에는 최근 접속자 수와 이력서 등록 건수 등이 10~20%씩 늘어 채용 시즌인 작년 11월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의 평균 페이지뷰는 설날을 앞두고 매주 3~4%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설을 앞두고 구직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채용에 나서는 기업은 적은 때라 더욱 안타깝다"고 밝혔다. 유승호·김현예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