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의 '근본적 해결책'을 촉구한 데 대해 그 방법론을 놓고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산 당국인 기획예산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증세를 통해 나라 살림을 늘리는 데 적극적인 셈이다.


반면 경제총괄 부처인 재경부는 세금 인상에 따른 조세 저항과 성장잠재력 훼손을 걱정해 증세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재경부는 돈이 필요하다면 기존 예산 지출의 낭비 요소를 줄이는 게 먼저이고 세금에 손을 대더라도 국민 반발이 큰 세율 인상이나 새로운 세금 신설보다는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견해다.


기획예산처는 진작부터 세금 인상을 통한 재정 확대론을 주창해 왔다.


특히 변양균 장관이 적극적이다.


변 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의 27% 수준인 한국의 재정 규모는 미국(36%) 일본(37%) 영국(44%) 등에 비해 턱없이 작다"며 재정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재정 확대의 방법으로 세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저출산·고령화 대책 재원을 놓고도 재경부는 저출산 목적세 신설에 부정적이었으나 변 장관은 집요하게 목적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작년 세제 개편 때 세수 확대를 위해 추진됐다가 결국 조세 저항으로 무산된 소주세율 인상도 사실은 변 장관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부에선 노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변 장관이 대통령의 '큰 정부론' 코드에 맞춰 이번 신년 연설의 논리를 상당부분 제공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정작 세금을 인상한다면 주도해야 할 재경부는 내심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금 인상에 따른 조세 저항과 민간 경제부문의 활력 저하 등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상당히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금 인상안을 놓고 반대할 수도 없어 더욱 난처한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법인세와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율 인상에 대해선 작년에 논의했으나 국가 간 조세 경쟁이 치열하고 경제에 비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점 때문에 선택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었다"며 우회적으로 세금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앞으로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본격적인 지급이 시작되면 양극화도 상당히 해소될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해 양극화를 풀어야지 무턱대고 세금부터 올리자고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최근 김근태 열린우리당 상임 고문이 "경제부처 내 시장 맹신주의자들이 있어 양극화가 방치됐다"는 공격까지 해대자 더욱 몸을 움츠리고 있다.


차병석·박수진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