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들어 지난 1년반 남짓 동안에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2865건으로 16대 때보다 50% 정도나 넘어섰다고 한다. 일단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원들의 입법활동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은 국회 본연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그렇게 좋아할 일만도 아닌듯 싶다. 법안 가결률이 26.8%로 지난 15대의 40.3%와 16대의 26.8%에 훨씬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의원입법의 질은 오히려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입법 실적을 올리기 위한 의원들의 인기몰이식 졸속 발의가 많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특정이익단체나 계층을 대변하는 식의 입법도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고 보면 우려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의원입법의 증가는 정부가 편법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추기는 측면도 강하다. 입법을 추진하고자 하는 주무부처로서는 골치아픈 부처간 입장 조율이나 당정협의 등을 거치지 않고 입법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원입법이 정부 법안의 일부 문구만을 고쳐서 제출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유사한 법안을 경쟁적으로 제출하는 사례 또한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대학 수학능력시험 부정사건이 터지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8건이나 제출됐으며 학교급식파동 때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6건이나 발의되기도 했다. 더욱이 여·야당이 여론을 의식해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는 것은 물론 같은 당 소속 의원들조차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고 발의를 한 사례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를 의식한 지역구 편향의 인기영합적 입법은 정부 정책의 혼선을 유발하게 되며 이로 인한 예산낭비 등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과시를 위한 마구잡이식 입법을 막고 제대로 된 입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국회의 정책 분석 능력 등 전문성을 높이는 등 입법조사 기능을 대폭 강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 입법 보좌기구의 기능을 보강(補强)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들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