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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줌마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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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1999년 방송된 것으로 처녀 시절 장미처럼 화사하고 똑똑하던 주인공(최진실)이 결혼 뒤 직장과 가정에서 갈등을 겪다 결국 콩나물처럼 변해간다는 내용이었다. "포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임신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새 천년이 가져온 변화였을까. 2000년에 나온 '아줌마'는 돈과 학력을 내세워 잘난 척하는 시댁에서 구박덩이로 살던 전업주부(원미경)가 남편과 이혼하고 당당하게 홀로 서는 과정을 그려 갈채를 받았다. 3년 뒤 '대장금'의 주인공(이영애)은 연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주위의 온갖 질시를 극복하고 제 길을 간다. 장금은 누가 뭐래도 기죽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남자는 시대와 끝없이 불화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도 돌아서기는커녕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돕는다. 지난해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은 사랑 때문에 상처 받고 아파하면서 힘들어 하지만 남자에게 모든 걸 걸거나 일방적으로 기대지 않은 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드라마 속 여인들의 삶만 바뀌랴.70년대에 태어나 부모가 된 X세대(2635) 여성들의 경우 '줌마렐라'의 특성을 지닌다는 보고서(제일기획)는 한국여성의 삶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줌마렐라는 아줌마의 '줌마'와 신데렐라의 '렐라'를 합성한 것.'아줌마지만 신데렐라처럼 아름답고 적극적인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내가 제일 소중하고,출산이나 양육만큼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며,아이에게 투자하는 만큼 자기계발도 하는 등 모성 못지 않게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자세가 특징이라고 돼 있다. 자신을 중시하는 만큼 소비주도권을 행사하는 것도 줌마렐라의 주요 속성이다. 일하면서 아이도 키우는,멋진 줌마렐라는 모든 여성의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줌마렐라가 되자면 누군가 아이를 봐주고 가사 또한 분담해줘야 한다. 자신에게 충분히 투자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있어야 함도 물론이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줌마렐라는 그저 꿈이거나 상술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밖에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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