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환 당국은 입을 앞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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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
시장은 언제나 열기에 넘쳐난다.
외환 시장은 더욱 치열하다.
더구나 글로벌 시장이다.
젊은 딜러들이 피를 흘리며 스크린을 달군다.
서른다섯이면 퇴물이 되는 시장이다.
뉴런의 반응 속도가 빨라야 버틴다.
두뇌 싸움이 아니라 유전자들의 전쟁이다.
게임은 언제나 돈 놓고 돈 먹기다.
좋은 말로 헤징(hedging)이요 막된 말로 너 죽고 나 살기다.
이것이 이 고약한 단어의 진짜 뜻이다.
너의 손실로 나는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자겠다는 것이 헤징의 기본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냉혈적 인간들에게 맞다.
미세한 차익을 따먹는 발빠른 매매 기법을 스캘핑(scalping)이라고 한다.
쓰러진 적의 이마 가죽을 칼로 벗겨낸다는 뜻이다.
구역질 나는 시장이다.
"이긴 자에게 축하…"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베어링의 리슨이나 다이와의 이구치 도시시데처럼 "감옥에 끌려와서야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고 회고할 따름이다.
그러나,아니다!
외환시장은 딜러들의 게임 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이에나가 떼를 지어 찾아드는 것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고 무언가 죽어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다.
유서깊은 잉글랜드은행의 살점이 조지 소로스에게 뜯겨 나갔을 때도 그랬고 어리석은 한국의 재무관료들이 통화 위기의 제물이 되고 있던 97년 늦가을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하이에나이며 누가 하늘을 나는 독수리인지를 몰랐을 뿐이다.
외환시장은 때로는 결코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곧바로 국가 주권일 때가 더욱 많다.
닉슨 쇼크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통화 전쟁이 막을 올렸다고 하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환은 곧 국가가 아닌 적이 없었다.
지난 85년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마주 앉았던 것도 스캘핑의 회전수를 자랑하던 게이머들이 아니었다.
검은 수트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당국자들이었다.
협상은 조용히 침묵 속에서 진행됐다.
실제로 그랬다.
주먹이 힘을 쓰기 시작하면 말이 필요 없어지는 법이니까.
협상 막판에 미국 대표는 냅킨에 '125'라는 숫자를 천천히 또박또박 써서 일본 대표단에게 들어보였다.
"이 숫자에 맞추어 주시오!".그리고 협상은 끝났다.
달러당 250엔이었던 85년 시절의 이야기다.
엔화는 결국엔 79엔까지 밀려갔다.
10년 후인 95년 4월19일의 역사적 고점까지.그렇게 일본 경제의 험난하고도 기나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88년에는 FRB 의장을 지냈던 폴 볼커라는 사람이 BIS비율이라는 새로운 기준까지 들이댔다.
일본의 시중은행들은 이 새로운 기준에 의해 통제되었고 그것으로 버블시대는 조종을 울렸다.
J커브 효과 운운하던 이론가들은 10년 불황에 들면서 차례로 입을 닫았다.
미국 역시 87년 작은 버블이 터지는 상처를 받았지만 가벼운 생채기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법이다.
상대는 아예 10년을 뻗어버리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니 일본의 침몰과 부활에 대해 함부로 방정 떨며 말하지 말라.
원화 환율이 새해 들어 거침없이 1000원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입장에 따라서는 박수를 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국자들이여, 제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느니…,경제 체질이 강화된 결과라느니…,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설 때…" 따위로 미리 설레발을 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외환위기 이후 오늘까지 1000원 이상에서 팔아 넘긴 자산만도 그 얼마인가.
눈물짓는 사람이 아직은 많다.
그러니 부디 방정을 떨지 말기를 바란다.
당국자들의 무정견과 우왕좌왕은 아예 신물이 날 지경이다.
해설가를 자처하는 일이 이제는 언론의 전유물조차 아닌 모양이다.
jkj@hankyug.com